건국 이후 우리 민족의 나태함과 빈곤 탈출, 더 나아가서 의욕적으로 잘 살아보자는 희망과 미래 비전을 함께 제시한 새마을운동은 말하자면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결집시키는 운동으로 출발해 군사정변의 당위성과 국가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운용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나는 당시 정치색을 배제한 여러 사회의 각종 단체에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꼭 맞는 유효적절한 운동이라 내심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 당시 준전시 상태인 북한보다 국민소득이 낮았고 산업조차 보잘 것 없는 농산물 수산물을 중심으로 한 1차 산업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성이 나태하고 게을러 희망 자체가 없는 민족 같았다. 오죽했으면 영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을 피우기보다 힘들다’고 했겠는가. 말하자면 정치에 식상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때였으므로 농촌은 물론 도시민에게도 마음에 와닿는 정치색을 배제한 새마을운동은 우리들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이 되는 민족 최초의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사회의 지배층과 관련 부처의 공무원들은 물론 국영기업체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이 적극 호응하고,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솔선하며 새마을운동에 관한 취지와 목적의식, 그리고 향후의 미래관에 대한 강의를 즐겨 받았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새마을 연수원을 2박 3일 동안 거의 의무적으로 수련 받으며 본연의 취지와 사상과 이념을 비롯한 확고한 국가관을 교육 받았고 공동체 의식은 물론 근검절약에 관한 주지의식을 심어 주며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정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초산업단계로 국민의 필요한 생활필수품과 대부분의 물품들을 거의 수입해 쓰다 보니 그 절약정신이 희망의 목표가 된 모양이었다.
처음의 호응도는 별로 높지 않았으나 하나의 국가정책으로 사활을 건 모습이 진전되어 가자 차츰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짐으로써 호응도도 높아갔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든 면에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났고 이제는 국민 스스로가 동참하고 솔선수범하는 안정적 단계로 접어 들었다.
국민들의 인지도를 넓히는 결정적인 계기는 농민들이 농지를 경작하기 편하고 능률을 높이기 위한 단위별 농지 개편과 농로 넓히기, 그리고 현실적 단위 수확을 높이기 위한 과학적인 수로의 확장과 창의적인 설비로 인한 초가집 개량, 마을 단위로부터 시작한 골목길 넓히기는 참으로 건국 이후 최대의 성과를 이룬 대단한 착상과 발상으로 그 실효성을 세계가 인정하는 단계로 정착된 것이다.
더구나 재건운동본부가 주관한 문맹자 퇴치와 도심의 각 공장 등 산업체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 재건학교 과정의 중·고등학교 설립으로 일면 일하며 배우게 된 정책은 더욱 큰 실효성으로 계층을 망라한 모든 국민의 열화 같은 성원을 받았다.
더구나 학비는 물론 교과서까지 무료로 지급하는 정부에 대해 가난한 농어민들은 열화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말하자면 그때의 슬로건은 ‘일하며 배우자’였다.
나는 애초부터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재건운동의 시작 때부터 이제야 이 나라에 제대로 된 부흥과 발전이 있겠구나 하고 내심 크게 반기고 있었다. 내 자신의 생활습관이 평소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에 나가고 오전 6시 식사와 7시 전후의 출근이 오랜 습관으로 생활화되어 있는 터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냉정히 판단해 보아도 새마을운동은 국민들의 의식 개조와 국가 발전의 초석으로 현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동남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등 빈한한 나라들은 당시의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활용하려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그 나라의 요청으로 우리나라의 새마을 입안자들이 각국에 파견되어 그 나라의 특성과 풍습, 그리고 현안에 맞는 형태로 새마을운동을 접목시키고 있어 우리나라의 국위선양에 한몫함으로써, 그때 그 시절의 우리들의 업적과 우리가 함께 하던 새마을운동에 대한 향수가 더욱 그립고 자랑스럽다.
나 또한 기업인으로서 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하고 새마을운동에 성실히 임한 것을 지금도 소중한 경험과 체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도자 한 분의 탁월한 정책감각이 하면 된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나태하고 게으른 국민성의 의식 개조로 국가발전의 모태로 활용할 수 있다니 지금도 너무나 감격스럽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는 많이 엇갈린다. 그 중에서도 헌법을 무시한 쿠데타로 집권해 민주주의를 말살한 유신헌법으로 장기 집권한 독재자로서 국민들의 제한적 헌법을 무시한 사법부의 일부 살인적 초법적 헌법으로 많은 분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새마을운동만큼은 우리나라를 농업후진국에서 대번에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또한 공업국가로 가는 산업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수출입국을 지향하는 비전의 길을 연 것이다.
우리의 국민성도 선진국에 못지않다는 일념을 보여준 지도자로서의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은 영원히 우리민족에게 각인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