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예배당, 잊혀진 선교의 기억”
주차장 아래 묻힌 선교의 터 — 가우처기념예배당의 흔적
가우처기념 예배당(인사동 246)
한국교회에서 가우처(J. F. Goucher)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진다. 특별히 한국 감리교회사에서 그의 이름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인물이지만 현실적으로 낯선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YMCA건물 뒤편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를 기념하는 예배당이 있었다. 사실 이 예배당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예배당으로써의 본연의 기능은 하지 못한 채 한 출판사의 창고로 쓰이는 형편이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예배당이 헐렸고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예배당을 헐었을 때는 무엇을 하려나 했는데 주차장이 만들어짐으로써 그 이전에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예배당은 1975년 한 출판사에 팔린 후 40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었지만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는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언젠가는 헐릴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 염려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쉬운 주차공간을 확보했다는 기쁨이 더할 것이나 의미있는 건물이 사라졌다는 아픔은 간데없다. 답사자로서 그 자리에 어떤 표식이라도 하나 남길 수 있는 여력조차 없는 것인지 하는 아쉬움을 마음에 담은 채 돌아보아야 했다.
주차장으로 변한 예배당 터를 확인하는 순간 황망했던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역사로 남겨야 할 우리 시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화상이라는 생각에 슬픈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안내를 하다가 함께 찾아간 일행들 앞에서 한국 교회의 무관심에 대해서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예배당이 왜 ‘가우처기념예배당’인가 하는 것이다. 가우처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기념예배당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만 살펴보기로 하자. 이 예배당은 1923년 미국 북감리교회가 해외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당을 한국에 짓기로 한 것인데, 그것을 ‘가우처기념예배당’(Guocher Memorial Church)으로 할 것과 서울의 중앙교회 자리에 지을 것을 결정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미국 남감리교회에서는 역시 선교 100주년기념사업을 계획하면서 서울에 선교관을 짓기로 했다. 남감리교회는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램버스(W. R. Lambuth)를 기념하는 건물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렇게 미국의 남·북감리교회가 각각 해외선교 100주년 기념건물을 짓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하던 중 1924년 2월 두 교단의 사업추진을 맡았던 이들이 모여 조선에 남·북감리교회가 하나의 기념건물을 짓자는 데 뜻을 같이했고, 그 일환으로 100주년 기념사업도 같이 할 것과 기념관을 따로 짓지 말고 두 교단이 하나의 기념관을 짓되 ‘가우처-램버스기념예배당’으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들의 당초 계획은 3천 석 규모의 대형 예배당을 기념관으로 짓는 것이었다. 남·북감리교회의 연합집회가 가능할 정도 규모의 상징적인 건물을 짓기로 했으나 사업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진행되지 않았다. 같은 감리교회이지만 당시 미국의 남·북감리교회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선교 현장에서 연합의 필요성과는 달리 본국 교회에서의 입장의 차이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이 아닐지… 결국 남·북감리교회의 선교 100주년 기념예배당으로 추진되던 사업은 당초의 계획보다 1/10정도로 축소되어서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60평 규모의 건물로 건축되었다. 이 예배당은 중앙교회가 중심이 돼서 1926년에 완공되었고 중앙교회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이 예배당이 있었던 자리는 본래 최병헌 목사가 살았던 향정동 집 자리이다. 그의 집을 일컬어 향정동(香井洞) 집이라고 했던 것은 그의 집에 우물이 있었고, 그 우물가에 향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인사동 246번지는 YMCA건물 뒤 현재의 중앙교회 사이이다. 이 예배당이 있던 향정동 집터는 북감리교회 선교부가 정동을 떠나서 종로로 진출한 최초의 장소이며,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공동체가 후에 종로교회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1930년 중앙교회로 개명을 해 역사를 잇고 있다.
즉 이 자리는 북감리교회의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1890년 1월에 구입해 전도인이 살 수 있는 집과 교회가 시작된다면 그 전초기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곳이다. 아펜젤러가 마련한 이 집에서 1890년부터 집회를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 이듬해인 1891년 봄부터는 건너편 대동서시(大東書市)로 옮겨서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동서시에서도 모임이 되지 않았다.
향정동 집터에 최근까지 있었던 ‘가우처기념예배당’은 1931년 한 차례 증축을 했으며 해방 후까지는 중앙교회가 사용을 했다. 1975년에 중앙교회가 이 건물 90평과 대지 510평을 한 출판사에 매각하고 태화복지관 자리로 옮기면서 ‘가우처기념예배당’은 타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고, 출판사의 창고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그마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