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엄격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물려 받은 특권층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당시 유명한 바리새파 랍비였던 가말리엘 문하(門下)에서 교육을 받았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베냐민 지파였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직임(職任)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자질을 구비한 셈이다. 탁월한 지식과 습득한 언어로 헬라인들에게도 연설할 수 있었다. 지적 재능, 예리한 사고, 부드러운 정서, 깊은 정신, 강한 의지를 겸비한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이자 인물이었다.
성격은 강인하고 대담했다. 다메섹 도상(途上)에서의 회심 이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도는 유대교 교육을 철저히 받았기 때문에 구약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장로들의 유전에 뿌리를 두는 지식까지 겸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준비를 시키신 섭리를 본다. 구약을 복음 진리에 관한 예표와 언약의 책으로 삼았다. 하박국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선포한 선지자로 보았다. 유월절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의 상징으로 보았다. 광야의 만나를 그리스도의 만찬에서 생명의 떡으로 보았다.
학자들은 사도가 로마 시민권자였으므로 존경받는 계층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장막 짓는 기술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회심 이후에는 수많은 시련과 박해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혼자 사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느꼈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고통스러운 신체적 고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를 위해 세 번 기도했으나 여러가지 풍성한 계시를 받았고 받은 은혜가 크므로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셨다고 했다. 그는 질그릇에 하늘의 보화를 가졌다고 고백했다.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고질적인 두통, 심한 안질(眼疾), 성적 유혹 등의 한 가지일 것으로 본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사도의 회심은 개인 역사는 물론 교회와 인류 역사에도 크고 위대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기독교가 세계사적 승리를 거두게 했다. 박해를 하던 바울이 가장 유능한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온 기적이다. 그가 회심한 다메섹은 아브라함 시대에도 알려진 오래된 도시다. 야자수들이 자라는 곳이다. 시인들은 이 도시를 ‘사막의 눈’이라고 불렀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예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책망의 말씀이다. 이 질문은 바울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바울은 엎드렸다. 두려워 떨리는 마음으로 보고 듣고 믿고 순종하고 기뻐했다. 사흘을 보지 못하고 금식했다. 그리고 치유받고 세례를 받았다. 거만하고 격노하고 날뛰던 바리새인이 참회하고 겸손하며 감사하는 예수님의 종으로 변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믈’이 된 것이다. 그 뒤로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살기(殺氣)가 등등(騰騰, Powerful)했던 바울은 온전히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했다.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우뚝 섰다. 옛 사람은 그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그 믿음을 붙들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오! 주여! 허물과 죄가 많은 저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를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