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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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의 숨은 현장, 잊혀진 태화관 터를 찾아서

독립선언서 낭독된 ‘별유천지 6호실’의 자리, 새김돌 하나만 남은 3·1만세운동 발상지의 쓸쓸한 현실

3·1독립운동발상지

이 새김돌은 명월관(후에 태화관으로 불림)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 지어진 건물(태화빌딩) 옆에 자리하고 있다. 길가에 세워졌기에 지나는 길에 쉽게 접할 수 있다. 무심히 지나치면 그저 커다란 돌 하나가 세워진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비석은 이곳이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인 것을 알려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실제로 시작된 곳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종로의 뒷골목으로 변해버린 이곳에 자리했던 명월관 <별유천지 6호실>이라는 한옥집이 실제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곳이다.

이곳을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독립선언서가 이곳에서 낭독되었고, 민족대표로 일컬어지는 33인의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서 거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본래는 탑골공원에서 선언식을 하기로 했지만 군중들이 폭력적인 시위와 일경의 폭력적 진압 때문에 고려해 갑자기 장소를 바꾸기로 했던 것이다. 주변에 그럴만한 장소나 공간이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천도교를 이끌던 손병희 선생이 자주 이용하던 명월관이 공간도 넓고 독립된 공간이 있어서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명월관에 연락해 주인인 안순환이 마련해준 방 <별유천지 6호실>이었고, 그곳에서 거사를 치를 수 있었다. 안순환은 명월관 후원 한적한 곳에 자리한 태화정(이 건물이 별유천지 6호실로 알려진 곳임)을 비워서 거사의 장소가 되게 했다. 그 후 당시 나랏일을 걱정하는 주객들이 한풀이를 하던 장소로 애용하는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명월관에서 기생으로 일했던 이난향(李蘭香)이 남긴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이날(3월 1일) 아침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점심 손님 30여 명이 간다는 연락을 받은 태화관 주인 안순환 씨는 손수 나와 아랫사람들을 지휘하며 태화관 안팎을 말끔히 치우느라 바빴다. 하오 1시가 되었을 무렵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종교계 인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불교 대표 한용운 스님이 들어가시는가 하면 기독교 대표 오화영 목사도 들어섰고 오세창, 최린, 권동진 씨 등 보기 드문 손님이 한 방에 모이는 바람에 일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손병희 선생이 도착하자 좌중은 거의 찼고 어느 틈엔가 태화정 동쪽 처마에는 태극기가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고 당시의 정황을 기록하고 있다. 현장에서 목격한 것을 재구성해 기록으로 남긴 것인 데 역사적 증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태화정이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거사를 치른 장소인 것을 증명하는 증언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에 대한 확인과 함께 이곳을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현재 태화관 터를 찾노라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만큼 낯선 곳이 되어있다. 태화관의 흔적은 고사하고 그곳이 과연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무엇인가 남겨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 사실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새김돌 하나만 덩그러니 길가에 세워졌을 뿐 그마저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곳이 이렇게 흔적도 없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 1978년, 유신정권 말기에 서울시가 도시계획을 하면서 이곳을 재개발지역으로 발표했고, 그 과정에서 태화관 운동장 한 가운데로 길이 만들어졌다. 길이 만들어지면서 태화관 건물의 귀퉁이도 잘려나가게 되었다. 태화관 측에서는 역사적인 근대건축물이니 보존을 호소했지만 어떤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태화관은 헐려야 했고, 그 넓은 땅도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분할되어 콘크리트 빌딩으로 지어져야만 했다. 건축의 자유도 제한되어서 반드시 성냥갑 형태의 빌딩이어야 한다는 규제 때문에 독자적인 건물조차 지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어진 것이 현재 12층의 태화빌딩이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새김돌은 태화빌딩 서쪽 길가에 세워져 있다. 그것도 길을 만들면서 터라도 여유롭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좁은 길가에 덩그러니 세워 놓았다. 지나는 사람들이 걷는데 불편을 느낄 수 있으니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옹색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우리 역사의식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마음만 남겨진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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