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 저일 생각하니] 무적 해병대 독립시켜 4군체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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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해군 380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되었다. 지리산 공비토벌에 전과를 이루고 곧 6.25 사변을 만나 미국 마가릿 히킨스 종군 기자로 하여금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을 얻게된 김성은부대 통영상륙작전(1950. 8. 17) 승리를 비롯해 난공불락의 중부전선 도솔산고지(1951. 6. 19) 탈환 등의 6대 작전 승리의 공적이 청사에 빛난다. 휴전 후 월남 자유를 지키기 위해 파병된 해병청용부대는 짜빈동 전투를 비롯 전승 공적이 뛰어난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군역사에 빛나는 정예부대 해병대가 창설 24년만에 1973년도 10월 10일에 해체된 비극이 있었다. 국방부 발표는 “자주국방 태세 확립과 경제적인 군 관리운영”이라는 명분을 세워 국방부 훈령 제157호에 의해 해병대는 해군에 병합시켜 원망스럽게 해체시켰다.

해병대가 해체될 당시 유신체제 2년째 되는 1973년도였다. 해병대는 5.16군사 정변 때 육군 밖의 군대로서 해병김포여단이 협력해 한강도강작전을 성공시켜 주었다.

어느 해병 예비역 장교에게 들은 바로는 당시 공화당 정부가 느닷없이 해병대가 청와대 습격의 군사정변을 일으키지 않을까 늘 불안해 오다가 막강한 해병대의 군 사기를 꺾기 위해 해병대를 해체한 것으로 들었다. 해병신문(352호 353호 합병호)의 ‘해병대가 걸어온 77년’ 글에도 어느 예비역 해병장교의 증언과 같은 해병대 해체 사유가 언급되어 있다. 그간 병력도 줄고 해군 더부살이로 14년간 설움 받아오던 해병대는 장사병이 꾸준히 해병대 원상회복에 적극 노력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 다시 선 신군부에 의해 해병대사령부가 복원되어 지금 경기도 화성시에 늠름하게 서 있다. 해체된 해병대 원상 복귀에 앞장서 투쟁한 장교는 예비역 해병대위로 현소환(1937-2018) 당시 연합뉴스 사장이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저서 <현소환 평전>에 많은 해병들의 해병대 해체 비극과 복원 기쁨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 해병대를 4군체제로 만들어 대한국방을 튼튼히 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운 대통령 후보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2025년 7월 10일 해병대를 해군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해병대 독립 5법이 국회에 발의 되었다. 1. 군조직법 2. 군인사법 3. 군사법원법 4. 군수품 관리법 5. 국방개혁에 관한법 등이 국회에 발의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 공약 실천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지난해 12월 18일 국군통수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은 회의 석상에서 안규백 국방장관에게 육군으로 넘어간 해병 1사단 2사단 작전권을 속히 해병대로 넘기라고 지시했다.

함께 참석한 주일석 해병대 사령관도 육군에서 작전지휘권을 하루 속히 해병대로 넘겨 주길 바란다고 했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해병대 작전사령부도 새로 설치하고 전과 같이 계급도 대장급이 나오고 국방부와 합참에 해병인력을 많이 배치하겠다고 했다. 국가 민족관이 투철한 애국청년들이 어려운 입대경쟁을 뚫고 해병으로 입대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손자 박세현군이 미국에서 건너와 1323기 해병 신병으로 입대했다. 해병 하사관 장교 모집 교육도 환원시켜 해병대가 입대시켜 훈련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도솔산고지 승리 후 무적해병 휘호를 내렸다. 그야말로 무적해병의 빨간 명찰 팔각모 용사들의 사기를 높이 살려 소수 정예부대 해병대가 ‘나가자 해병대가’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4군에 앞장서서 대한민국 굳게 지키는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사기충천의 해병대를 철통같이 육성해 해병 4성장군을 사령관으로 세워 무적 해병대를 해군에서 완전히 독립시켜 대한민국 군조직을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4군체제로 만들어 반석같은 반공 자유 민주국가로 만들어 주길 빌어 마지 않는다. 해병대는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신념으로 더욱 용감무쌍한 군대로 대한국민의 신뢰와 존경받는 막강한 나라의 방패가 되어 주길 바란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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