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산 위로 초대 (시편 121편 1~7)

Google+ LinkedIn Katalk +

청소년 시절 힘들고 지칠 때면 목포에 있는 유달산에 자주 오르곤 했습니다. 신학교 시절 엔 광주 호신대에 있는 양림 동산에 올라 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무안 해제에 있는 봉대산에 오릅니다. 산 위에 오를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려 옵니다. 

사순절은 인생이라는 험난한 산을 오를 때, 내 판단이나 주변의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 앞서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핏자국 난 발걸음’만 묵묵히 따라가는 절기입니다. “인생의 가파른 평지에서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주님의 발자국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의 산에 오르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121편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말씀만 보면 시인이 마치 등산하듯 여유의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은 그렇게 낭만적인 장면만은 아닙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 올라 묻습니다. 내가 산을 향해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 이 물음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불안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시편 121편의 산은 시온성이 있는 시온산입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둘러싼 산맥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신앙의 중심을 상징하는 산입니다. 

여러분 등산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산 위에 오르는 산길은 매우 험하고, 시야는 가려지며, 예상하지 못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켜 주지 못합니다. 그 산이 시온산이라 할지라도, 지켜주지 못합니다. 산 자체가 거룩한 장소 일 수는 있지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산 위에 올라 산을 바라보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산에서 답을 찾지 않습니다.

산 위에 올라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고백은 산의 정기를 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살아 오면서  자신만의 여러 산을 만들어 왔습니다. 경험이라는 산, 책임감이라는 산, 성취라는 산, 관계라는 산, 심지어는 신앙의 열심이라는 산까지 쌓아 올리며, 그것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몸과 마음이 버거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산들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만큼 했으니 버틸 수 있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들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어떤 산도 하나님처럼 우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잔제 의식 속에 존재하는 산신령(山神靈)은 없습니다. 다 우상이며 허상입니다.   

본문에 “지키신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샤마르’는 단순히 멀리서 지켜본다는 뜻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살피고 보호한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무심히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을 눈여겨보시며 붙들어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 고난을 만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위험이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과하도록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피해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견딘 후에 성장합니다. 책임을 감당한 뒤에 사람이 달라지고, 상실을 지나온 뒤에 믿음의 시선이 깊어지고, 다 무너질 뻔한 시간을 통과한 뒤에 신앙은 삶의 고백이 되고 살아 있는 간증이 됩니다 

산은 단순히 높은 지형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장소이자 제자 훈련의 훈련소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산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변형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성공의 산을 향해 “높이 올라가라, 소유하라”고 말하지만, 성도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을 가지고 주님의 산으로 올라야 합니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작아 보이고, 주님의 산은 크게 보입니다.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첫 번째 산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산 위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단둘이 만나는 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십시오. 기도의 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경험할 때,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 고난을 견딜 힘을 얻습니다.

산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곳입니다. 지금  험한 산을 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영적인 침체라는 깊은 골짜기에 계십니까?  주님은 당신을 산 위로 부르고 계십니다. 다시 기도의 산에 오르십시오. 말씀의 동산에 오르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모든 출입과 영혼을 지키십니다. 

김희진 목사

<무안 창매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