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 하늘나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할 크리스천의 삶 속에 고통이 계속되는 것은 그들의 소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의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고통하고 애통할 만한 가치가 이 땅의 것들에는 없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고 쓰러졌어도 밤새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소망이 하늘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도 의연했던 것은 그들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하늘나라에 합당한 삶,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나그네의 삶이라고 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사람이지 정착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우리는 모두 이 땅을 떠나야 한다. 그런 우리가 이 땅에 무엇을 쌓고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우리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순간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다(약 4:14). 아침에 안개가 세상을 뒤덮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태양이 떠오르면 안개는 바로 사라진다. 이 안개처럼 살아가는 인생이 무슨 10년, 20년을 염려하고, 계획하며 살아가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천국을 준비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의 것들은 무가치하다. 믿는 자들이 이 무가치한 것을 잡으려고 눈물 흘리며 발버둥 치니 너무 안타깝다. 세상의 출세와 부요, 성공을 이루려고 하나님께 밤낮으로 울부짖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이 땅의 것을 간구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애통하며 간구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욕망을 버리게 해달라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 주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세상의 영광, 젊음과 명예, 부귀는 꽃과 같이 시들고 다 사라진다. 솔로몬은 이 땅의 부귀영화를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한다. 얼마나 헛되면 다섯 번이나 헛되다고 했을까.
참 믿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헛된 것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참 믿음의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우리에게는 눈물도 고통도 없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있다. 그곳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가지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계시다. 나는 오늘도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을 살고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듣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