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쉼터] 노하기를 더디 하라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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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 만에 친구들 4명이 조촐하게 모여 저녁을 함께 했다. 그동안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만나던 가까운 친구들이었지만 원하지 않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단체로 결성된 인터넷 카페에서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4명이 모여 회의를 겸해 친목을 다지기로 했다. 처음에는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서먹서먹할 정도였지만 곧 안부를 묻고 옛날로 돌아가 웃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좋은 시절을 잘 보냈으니 유감이 없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암울한 미래를 어찌 보낼 것인가를 걱정하기도 했다. 대화는 예전에는 잘 하지 않던 정치권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이런 엄청난 현실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성토를 하다가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러다가 사단이 일어났으니, 서로가 다른 의견으로 이야기하며 마치 싸우듯 소리를 높이다가 급기야 불편한 감정을 지닌 채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를 면박한 친구의 주장을 곱씹어 보았고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정하면서 그가 괘씸하게 여겨졌기에, 집에 도착해서 전화로나마 따지기로 하고 번호를 눌렀다. 마지막 번호를 누르려다가 ‘그래도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전화하지’ 하면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나의 주장을 우선 이메일로 알려야 겠다고 여겨 컴퓨터를 켜고 내용을 작성했다. 조금은 흥분된 상태에서 나의 주장을 빠른 속도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한 번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보내기’를 누르려다가 ‘내일 아침에 보내지’ 하는 마음으로 저장한 채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먼저 컴퓨터를 켜고 어젯밤에 보내려던 메일을 찾아 읽어보면서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용도 옹졸하지만, 오타도 많았고, 일생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는 너무나 격에 맞지 않았다. 일단 어젯밤에 흥분한 상태에서 친구에게 전화하지 않았고, 또한 수준 미만인 편지를 보내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이메일을 얼른 삭제했다. 그리고 잠시 언제나 걷는 산책로에 나가 걸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으니,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다시 대화의 통로를 트면 될 일이었다. 얼른 집으로 와서 친구에게 전화했다.「어제는 잘 들어갔는지, 지금 산책에서 막 들어왔다. 답답해도 잘 지내다가 빠른 시일 내에 또 한 번 만나자」는 선문답식의 말을 했고, 그도 ‘잘 있으라, 또 만나자’는 말로 화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생 동안 사귀었던 사이였고, 이제는 인생의 뒤안길에 있는 우리들이기에 그 정도의 눈치와 예의는 서로가 있는 처지였다. 이렇게 하마터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버릴 일이 잘 수습되었다.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렇게 한 박자만 쉬고 나가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듣자마자 불끈해서 되받아치면서 언성을 높이고 분노를 나타냄으로 좋았던 인간관계를 허물기도, 잘되던 일도 망가뜨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늘어나는 때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해서 우울증이 생겨나고 이것이 도를 넘어 분노로 변질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는 솔로몬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야 할 슬기로움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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