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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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먹잖아도 배부른 계절이다.
농경(農耕)은 조상 대대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경(農耕)을 으뜸으로 여긴 농업국이기 때문에 국력(國力)을 좌우하는데 기본이 되었기에 천하지대본이라 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을은 풍요를 상징하는 멋진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대대로 농업을 하는 백성들이었고 농지(農地)는 대본(大本)이었다.
올해 경자년(庚子年)은 몇 차례의 태풍이 애써 가꾼 농작물을 애석하게도 삼켜버린 곳도 있지만 그래도 가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한 해의 절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에 6절기씩 1년은 24절기가 된다. 그중 가을은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찬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의 6절기인데 곧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가 지나면 밤과 낮의 길이가 동일하다는 추분(秋分)이 다가온다. 이런 절기를 주워 농경의 기준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인간은 한 절기를 넘길 때마다 계절이 주는 새로운 감각으로 또 다른 의식 속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배경에서 오는 소양(素養)이다. 인간이 자연계(自然界), 곧 생태환경에 반응하는 작용은 곧 상응(相應)의 원칙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작용에 적응하도록 변하지 않으면 모든 생물은 살 수가 없다. 결국 도태(淘汰)되고 만다. 무엇보다도 자연계의 이 사실에 대처해야 하는 대상은 농부라 하겠다. 농부가 경작(耕作)하는 농사에 절기와 시기를 놓친다면 한 해의 농사는 모두 망치고 만다. 자칫 헛농사를 짓고 마는 실례가 수도 없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농부들은 농경에 온 힘을 다 기울인다. 벼 한 포기, 무 배추 한 포기, 복숭아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자식을 키우듯 돌보며 온 정성을 다 쏟는다. 이것이 농부의 마음이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가 씹고 있는 음식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소비자들의 올바른 자세라 하겠다. 이 세대에 이르러 풍요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러한 태도는 바른 자세로 볼 수가 없다. 쌀 한 알, 사과 한 개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늘에서 인간의 편익(便益)을 위해 뚝 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의 눈물 나는 노력의 대가로 세상사 모든 것이 연자(硏子)방아가 돌듯 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삶의 올바른 자세라 하겠다.

성경은 심은 것만큼 거둔다(고후 9:6)고 했다. 이는 인간의 수지(收支)에 대한 최고의 관념이다. 기독교 신자의 최소한의 신앙심은 이와 같은 기초적인 도리도 모르는 철부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농부가 작물을 키울 때, 자식을 키우듯 돌본 것을 먹을 때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신앙인의 자세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가끔 TV 화면에 비치는 아프리카에서 못 먹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볼 때가 있다. 이를 보는 우리들의 감정은 뉘나 하나일 것이다. 곧 가난은 적이란 점이다. 못 먹고 못 입은 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인간을 괴롭히느냐는 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 먹는 자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공통의식이 깨우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한 농부의 가련(可憐)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열하는 사막에서 고난의 사명을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신 주님이 보이신 사랑의 진원(珍原)에서 참 사랑을 배움과 같이 말이다.
풍요의 가을에 좋다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것보다 태풍으로 피해를 당한 농부의 마음도 헤아리는 아량(雅量)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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