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우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산다면(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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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의 한 중학교에서 체육 교사가 자기 반 학생을 유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학생을 가두고, 추적을 피하여 강원도를 전전하며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은 죽고 말았다. 얼마 후에 그 선생은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다. 누구보다 큰 슬픔을 겪었을 부모는 법정에 나가서 범인을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재판관에게 부탁했다. 부모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같이 아팠겠지만 우주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지고 그를 용서하였던 것이다. 당시 온 나라가 그 사건으로 분노했으나 부모는 그를 용서하였던 것이다. 당시 신문에도 크게 보도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성서에도 관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 다음으로 우주보다 더 큰 마음을 실천한 인물은 스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스데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성 밖으로 끌려나왔다.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 돌을 던졌고, 스데반은 그 돌이 쌓인 돌무더기 속에 파묻혔다. 그는 온몸이 피로 물들었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어 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였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용서하며 순교한 것이다. 스데반의 믿음은 우주보다도 넓고, 태평양보다도 깊고, 큰 관용을 가졌다. 죽음 속에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
솔로몬은 관용의 마음이 넓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고 하였고,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관용은 자신뿐 아니라 남을 살리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국가이다. 6.25전쟁 때는 북한을 도와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 그들의 행동을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원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 정부도 중국과 손을 잡고 교류하고 있고, 수많은 선교사들은 이 기회에 공산국가의 선교에 정성을 쏟고 있다. 관용의 마음으로, 그들의 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지고 복음 사역에 임하는 자세일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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