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고향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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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경상북도 의성이다. 매년 추석이면 연례행사로 사촌 형제들과 함께 고향으로 성묘를 다녀오곤 했다. 일 년에 한 번 고향가는 길은 언제나 교통 체증으로 고생하는 길인데도 어김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 것은 고향을 향한 귀소본능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고향에 친척도 거의 없어 만날 사람도 없지만 어릴 적 보고 자란 너른 벌판에 나지막한 산등성이와 높은 가을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온 세상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번 추석에는 고향 방문도 안된다고 하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미리 조용한 시간을 택해서 단촐하게 고향에 다녀오기로 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교통이 혼잡한 추석날 꼭 고향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와 같은 은퇴자는 더욱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이번 고향 방문은 필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가족이 함께 다니다 보니 성묘길에 무심코 지나쳤던 마을의 교회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교회 경내로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설립 1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택 문을 두드리니 마침 담임목사님이 나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교회 연혁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 교회는 1909년 설립되었고 지금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서 남은 교인들은 모두 노인뿐이라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근근히 자립하고 있는 형편인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는 설명이었다. 돌아오는 내내 고향마을에 100년 된 교회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점점 더 어려워지는 농촌교회 현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의성에는 100년이 넘은 교회가 30개나 있다는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의성의 첫 교회는 1900년 의성읍 비봉리에 설립된 비봉교회라 하는데, 이 마을에 살던 김수영이라는 분이 청도장터에서 한 전도사를 만나 전도를 받은 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마을로 돌아와 가정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라고 한다. 비봉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의 경북지역 선교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38년에는 의성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의성농우회 사건으로 많은 교인들이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고초를 당했는데,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님까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의성지역의 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특별하다.
의성은 안동, 영주와 함께 유교의 전통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고장으로 개신교 전도가 어려운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구 5만명의 농촌지역에 개신교회 150곳 중에서 30곳이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는 유교 전통의 집안에서 성장하여 대학 시절까지도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뒤늦게 대학원 시절에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늦깎이 신자이다. 그런데 고향마을에 이미 복음의 빛이 비치고 있었고 그 빛이 결국 한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하게 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었음을 깨닫고 새삼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롭게 깨닫게 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가 한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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