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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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내와 마주 앉아 드리는 가정예배에서 두 사람은 여느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다섯 손자손녀를 위한 기도를 거의 빼놓지 않는다. 대학에서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교에 다니는데 금년엔 코로나19 때문에 등교도 제대로 못하기에 가엾은 마음에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더 하게 된다. 엊그제는 2인 예배를 시작하면서 막내 손자가 ‘대통령이 되도록’ 키워주시기를 기도했더니 아내가 피식 웃었다. 그냥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라는 것이 아니고 그럴만한 자질과 성품을 갖춘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해 주시라는 뜻이었는데 앞에서 듣는 사람에게는 황당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대통령 깜」이란 말은 자라나는 아이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요 축복이었다. 기독교인은 대개 대통령이라면 모세를 떠올린다. 인생에 다른 여러 아름다운 길이 있지만 대통령은 사람으로서 태어나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권위와 함께 책임을 상징한다. 버락 오바마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처럼 젊은 나이에 여러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장한 모습도 따라온다. 그런데 내가 그 아침 한갓 주책없는 할아버지가 되고 만 것은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력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구시대적 생각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 오해됐기 때문이다. 3억 미국 사람들을 창피스럽게 만드는 트럼프 대통령 탓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최초로 기억한 미국 대통령 이름은 링컨이고 다음은 트루먼이었다. 그로부터 아이젠하워, 케네디, 닉슨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21세기에 와서는 부시, 오바마 그리고 참으로 희한한 인간형인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독재정치가 계속되어 선거 외의 방식으로 집권자가 바뀌고 하던 때에 미국에서는 선거라는 드라마가 매 4년에 한 번씩 연출되면서 선출 절차에서부터 세계인의 큰 관심사가 되고 뽑힌 자는 바로 국제정치의 주역이 되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인물도 많고 근대 민주주의 본고장으로서의 전통이 쌓여 있어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양대 정당과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과 경쟁의 언어는 인류의 정치행위가 만들어내는 가장 탁월한 작품들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음모와 부정행위가 오점을 찍기도 했으나 미국의 정치는 집단적 지혜의 경연장으로서 각국 민주제도의 이상형을 제시하고 국내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은 이런 것들을 온통 바꿔놓았다. 그는 첫째 거짓말을 많이 했고 증오를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전략적 무기로 삼았으며 우의와 관용을 내던져 버렸다.

지난 11.3 선거는 그의 최악의 행동의 연속이었다. 미국 인구의 상당부분이 그의 선동에 따라 몰이성적 이기주의의 추한 모습을 노출했다. 현직 대통령이면서 야당과 관료에 의한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사법부를 그의 억지주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이 그들의 행위에 어떤 제동을 가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후보 장본인은 입술로는 하나님과 예수를 부르면서도 기도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열한 살짜리 손주를 위해 기도할 때 나의 머리 속에는 턱수염을 기르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모습이 스쳐갔다. 장래의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국민의 뇌리에 강하고도 선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남기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선거도 한 해 반밖에 안 남았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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