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해의 새로운 설계를 위한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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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열두 번의 방학이 있었다. 단 한 번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생활계획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건물을 건축할 때도 설계도가 없이 지어지는 건물은 없다.
지난해는 매우 힘든 한 해였다. 큰 희망과 꿈을 가지고 시작한 경자년(庚子年)이었다. 비록 작지만 영리하고 부지런함으로 다산과 풍요, 영민함과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쥐띠 해인만큼 새로운 다짐으로 출발하였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를 팬데믹에 빠지게 만들어버림으로 모든 기대는 다 허물어져 버렸다. 더구나 세상 사람들은 재앙과 전염병을 몰고 오는 회색이나 검은 쥐가 아니라 상서로운 흰색 쥐띠의 해라고 하며 법석을 떨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해 준 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시작은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
등산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위험하다고 한다. 더구나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산 정상에 올라가라고 한다. 산꼭대기에서 내려갈 방향과 길을 재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시작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법을 고집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산 정상에 다시 올라가 기도와 말씀으로, 무릎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본임을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평생 동안 밥을 지었지만 어떤 때는 된밥이요, 또 어떤 때는 묽은 밥으로 상을 차릴 수밖에 없는 것은 온전한 전문가가 없다는 말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어지기까지 어부로서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이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림으로(눅 5:5)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내 힘으로 감당한 부엌 일이요, 일생 동안 생업으로 지탱해 온 내 직업처럼 보이지만 어떤 전문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주님은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며, 모든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길을 아시는 분이시다. 새해를 꿈꾸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려는 우리들이 기억하야 할 말씀이 다윗의 교훈 중에 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경자년의 쥐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축(辛丑)년의 소띠 해를 맞는다.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교회의 위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송아지를 떼어 놓고도 여호와의 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길로 행하는 암소처럼(삼상 6:10-15)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제물들이 되어야 한다. 끌고 온 수레와 나무를 패고 그 위에 드려진 번제물로서의 각오와 다짐이 없다면 총회 105회기의 주제인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은 그의 힘이 들소와 같았기 때문임에도 불구하고(민 23:22) 스스로 회복을 위한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가 없이 오히려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를 범한다면(출 32: 4)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19라는 위기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은 큰 교훈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지나간 경험들을 통하여 새해의 새로운 설계와 함께 회복의 꿈을 꾸며 시작하는 신축년 새해에는 지나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크신 섭리였음을 고백하는 놀라운 한 해가 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우리들의 각오와 다짐 여하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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