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복음의 꽃을 피운 문준경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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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섬이 1004개로 이루어 졌다고 해서 천사의 섬 신안이라고 부릅니다. 섬 어느 곳인들 문준경 전도사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으랴 마는 지난 20년 세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순교 현장으로, 기도하던 상정봉 바위 위에서 복음 전도자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외쳤던 시간들이 다시 한 번 새롭게 떠오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일제 강점기와 그리고 6.25 동란 때와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강제로 교회가 해산되었을 때 문준경 전도사님은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는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몇몇 가정을 비밀리에 모아 소리 없이 찬송가를 부르고 뜨겁게 기도하며 그들을 보듬어 위로하고 다시 모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신앙의 열매를 맺었으니 얼마나 귀한 사역이었는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문준경 전도사님의 두드러진 사역은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섬에서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힘든 일이었는데 전도사님은 손수 삯바느질을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합니다. 일례로 김준곤 목사님이 학업 중에 깊은 질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준경 전도사님은 치유의 은혜를 구하면서 꼭 나아서 학교에 가야 한다, 준곤이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간절한 기도 중에 치유함을 받았고 김준곤 목사님의 딱한 사정을 아시고 납부금을 주시면서 다시 공부하게 만들어 훗날 한국 대학생 선교회 ccc를 이끌게 하셨습니다. 

제가 중동리교회 시무할 때 김준곤 목사님께서 문준경 전도사님이 사역하셨던 곳 그리고 순교의 현장이 있는 증도를 가끔 방문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실 때부터 눈물을 흘리시며 증도 땅을 밟으셨습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 오며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순교의 현장에 같이 끌려가셨던 김두학 장로님은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문준경 전도사님의 무덤(증도 앞 바닷가 터진몫)가에 엎드려 펑펑 우시면서 당신을 살려주신 이유를 마지막 증언자가 되라고 하신 것 같다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중동리교회로부터 순교 현장까지 600여m를 새끼줄에 묶여 끌려 갈 때, 그 당시 여인의 나이 60이면 극 노인이었는데 그런 분을 발길로 차고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일인데 그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본보기를 보이느라고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질렀고 그럼에도 끝까지 당신의 딸처럼 여겼던 “백정희 전도사는 살려 달라고, 너희도 예수 믿으라고” 하시면서 신앙을 지키는 문준경 전도사님의 백절불굴의 믿음이 우상의 땅 증도를 복음화 시키고 한국교회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낳게 하신 것 같다라고… 질긴 목숨이라 죽지도 않는다고 마지막 숨구멍을 뚫어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고 총구를 대고 쏘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을 때 지금 도망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일을 가리켜 성령님이 나를 증언자로 쓰시려고 그들의 눈을 가리고 나를 감추시는 것 같았다고 우리들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이런 증언자들이 지금은 모두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이분들이 못다한 남은 사역이 있지 않을까요?

김상원 목사 (팔금동부교회)

·전 문준경 전도사 순교교회의 중동리교회 20년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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