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빚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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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교회 밖의 사람들은 말한다. ‘감사’가 꼭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고, 오늘날에는 예컨대 버스에서 내리는 젊은 승객이 예사롭게 “감사합니다”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식당에서도 음식을 받으며 손님이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등 감사예절이 보편화되고 있다. 서양 기독교문화에서 Thank you 하는 인사법이 이 땅에 유입된 것으로도 보이지만 실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로움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마음의 여유가 사람들에게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감사의 표시는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다름이 없다. 기독교인의 감사에는 그에 더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감사의 동기가 있다. 그것은 구원의 빚을 진 자로서 그 빚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이라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즉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음으로 내가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을 우리는 신앙의 바탕으로 삼으며 감사를 외친다. 그런데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고 모든 기도를 상황에 관계없이 감사로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은 과연 장래의 구원에 향해 있는가 아니면 오늘의 현실에 맞춰 있는가 의문이다.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감사하고 있는가?

우리들 감사의 첫째 내용은 생명에 대한 감사, 존재에 대한 감사이다. 이것은 물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이며 혈연관계에 있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다음의 내용은 오늘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인데 이것을 허락하고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세 번째의 감사는 고난에 관계되는 감사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인간이 갖가지 고난을 만나게 하면서 그것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부여하는데 그러한 시험을 이기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오늘에 대한 감사 이야기이다.

성경에서 바리새인이 세리와 같지않음에 대해 감사하는 장면을 보고 딱하게 여기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감사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는 오늘날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떼어놓는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이러한 상대적 감사가 기독교인의 감사 제목 중 대종을 이루었을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도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국민이 되고 특히 북한 같은 형편이 되지 않은데 대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감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아주 낮은 숫자에 머물러 있는데 대한 감사는 어떠한가?

세상의 거의 모든 사물은 소위 ‘제로섬’이어서 한 사람의 얻음은 다른 사람의 잃음이 되게 마련인데 자신의 소득이나 성취에만 감사하면 남들의 상실을 당연하게 보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억제하고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은 더더욱 아니다. 바랄 것은 상대적 감사를 버리고 우리가 되갚아드릴 수 없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절대적 감사로 나아오는 것이다. 살면서 이를 실현하는 길은 오직 감사를 사랑으로 바꾸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밖에는 없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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