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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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지막 원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죽음의 해결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종교는 참된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활의 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에는 부활이 없다. 석가모니는 음식을 먹고 복통이 나서 병들어 죽었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지 못했다. 유교에도 부활이 없다. 어느 날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듣고 자로는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살아 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 그리고 얼마 후에 공자는 죽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지 못했다. 철학에도 부활이 없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를 “철학은 죽는 연습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도 얼마 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또한 그도 부활하지 못했다. 이슬람교에도 부활이 없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에 가면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는 부활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것이다.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 독일의 본회퍼 목사가 감옥에서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였다. 험악하게 생긴 두 사람이 본회퍼를 사형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왔다. “본회퍼, 이리 나와서 우리와 같이 가자.” 본회퍼와 감옥에 같이 수감되었던 영국 군인은 본회퍼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알고는 비통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목사님 이제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자 본회퍼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평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그렇다. 성도에게 있어 죽음의 순간은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영광의 순간이다. 부활의 확신이 있으면 임종의 시간은 기쁨과 소망의 시간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또한 부활하셨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또한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픔이 다시 있지 않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됨을 믿어야 한다. 사실 우리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기 시작한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유명 인사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은 우리가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소망이 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을 가지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이란 성도에게는 천국으로 이사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오늘날 이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파스칼은 “인생은 우주의 영광이 되든지 아니면 우주의 쓰레기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속에 모신 사람은 우주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한 사람은 우주의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매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켰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만나면 “주님은 부활하셨다. 정말로 주님은 부활하셨다”라고 인사말을 나누었다고 한다. 성도는 부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오랫동안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부활절부터 오순절, 성령강림절까지 50일간을 기쁨의 50일이라고 한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50일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기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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