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월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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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하였다. 사상 초유의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 사회는 그 자체가 거대한 ‘황무지’였다. 무서운 겨울 같은 대전을 치른 유럽에 봄이 찾아왔지만, 전혀 봄 같지 않은(春來不似春) 불신, 불모, 불능에 처한 4월을 노래한 것이다. 유럽뿐 아니라 한국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속의 4월 역시 잔인한 <빼앗긴 들>같은 4월인 것이다. 하지만 4월은 새로운 시작을 가리킨다.
한국의 춘삼월(春三月), 서양의 April(開化)은 희망을 노래한다. 초유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며 신음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십수 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사막에 비가 내리면, 죽은 줄 알았던 씨앗이 수분을 흡수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죽은 것 같았던 겨울나무가 섭씨 15도 온기를 만나면 잠에서 깨어난다. 봄비라도 내리면 여지없이 새싹과 향기로운 꽃망울을 터뜨린다. 모든 것이 새롭게 열리는 계절, 4월에 한국교회는 새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4월의 진정한 클라이막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옛것을 떨쳐내야 한다. 절망, 체념, 무기력을 떨쳐내야 한다. 무엇보다 갈등, 대립, 반목을 떨쳐내야 한다. 적(敵)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진정한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는 그리스도의 친언(親言)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勸勉)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과의 싸움을 멈추고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회개’, ‘은혜’, ‘충만’이라 부른다. 정의의 이름으로 싸움을 걸고 갈등을 부추기고 대립과 반목을 지속하면, ‘자기 의(自己義)’를 넘어 바리새주의에 빠진다.

한국교회는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미담(美談)을 필요로 한다.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이야기는 한국의 망국병을 치료하는 치유 서사(healing narrative)인 것이다. 선교 이래 한국교회는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새 희망과 등불을 비춰 주었다. 지금 한국을 위기로 몰아가는 악한 기운은 갈등-대립-반목의 영이다. 가정, 교회, 직장, 사회 곳곳에 갈등, 대립, 반목이 끝없이 증폭되어 간다. 이것을 중재하거나 화해하기는커녕, 정치 일각에서 오히려 이것을 부채질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있다. 물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때가 있다. 분연히 일어서야 할 때 그리고 서로 양보하며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어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활의 계절 4월에 우리 모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주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주님이 그리 하신 것처럼, 세상을 내 뜻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제가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당신께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아멘.” 이 기도는 우리 모두가 드려야 할 4월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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