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95) 존 데이비슨 록펠러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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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의 록펠러의 재산은 2천 5백만 달러 정도였고, 그의 딸들은 1천 2백만 달러의 신탁재산, 아들은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가용재산이 5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아들 록펠러 2세를 단순한 유산 수익자가 아닌 동료 자선가로 보았다. 록펠러는 자신의 상속자 아들에게 ‘나는 내 아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재산을 쓰기 원한다.’는 쪽지를 남겼고, 아들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저는 아버지가 재산을 관리해 오신 것처럼 양심적으로 관리할 것이며 현명하고 관대하게 재산을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선물을 여러 가지로 보답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롤스로이스를 선물하려 하자 록펠러는 차 대신 현금으로 달라고 해서 자선사업에 기부했다.
막내딸 에드스도 아버지의 자선사업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록펠러가 거절했다. 록펠러는 거액이 오가는 자선사업은 남자들의 일이라고 여겼다.
록펠러는 25세에 결혼한 로라 셀리스티아 스펠만에 대해서 ‘인생에서 제게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준 일, 제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라면 사랑하는 아내를 얻은 것입니다.’라고 했다. 1915년 3월 12일에 아내가 76 세로 죽었다. 그는 울었다.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아들은 처음 들었다. 록펠러는 아내를 기념해서 시카고 대학 안에 시카고 채플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그리고 ‘로라 스펠만 록펠러 기념비’라는 이름으로 7천 4백만 달러의 재단을 설립했다. 이 기금으로 교회와 선교사를 후원했고 수년 동안은 초기 사회학 분야의 연구를 지원했으며 나중에는 록펠러 재단에 합병되었다. 두 재단에 록펠러는 총 5억 3천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그중 약 4억 7천만 달러는 록펠러 개인이 기부한 금액이었다.
‘내가 전 세계 인류에게 자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라고 전기 작가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전기 작가는 ‘뉴욕 월드’지의 편집장 윌리엄 인글리스로 록펠러의 자문위원 아이비 리와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다.
1917년에 자서전 집필이 시작되었다. 인글리스는 2년이 넘도록 하루에 한 시간씩 록펠러와 면담했다. 그는 록펠러의 재미있던 시절, 분노했던 사건, 겸손했을 때와 자만했을 때를 480,000단어로 표현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사의 성공이 ‘미국의 기업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은 못 되더라도 가장 놀라운 사건 중에 하나는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초상화를 두 번이나 그린 유명한 화가 존 싱거 서전트는 ‘록펠러의 얼굴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라고 했다.
록펠러는 더욱 높은 톤에 얇아진 목소리로 ‘예수는 내가 빛이 되길 원하시네.’ 찬송가를 가끔씩 흥얼흥얼거렸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왔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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