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살리는 사람” <누가복음 9: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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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시는 길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 속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들이 누가복음에는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1절) 걸어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길이 세 갈래였는데,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고개를 넘어서 갔다고 합니다. 문경새재에서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도 선비들은 굳이 문경새재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다’는 좋은 뜻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양까지 올라가는 그 길 걸어가면서 장원 급제의 꿈을 품었던 선비들처럼, 제자들 역시 ‘자, 이제 드디어 우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당당히 입성하신다’는 부품 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자신의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섭니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제자들은 자신의 감정이, 예수님의 옳은 걸음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의분(義憤)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진작 ‘분노 사회’라는 진단이 내려졌을 만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분노가 숨어 있습니다. 그 잠재적 분노는 자신의 ‘힘’을 쏟아부을 틈새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힘이면 다 된다는 생각, 사람을 대할 때나 자연 만물을 대할 때나 ‘힘’이 기준입니다. 그렇게 한껏 격앙된 제자들의 목소리가 쑥 들어가게 하는 예수님의 꾸짖음이 이어집니다. 55절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난하주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고대 사본에는 55절 끝에 다음 말이 있음.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인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걷는데, 너희는 이들을 멸하고자 하느냐.
인자는 예루살렘을 향한 이 길의 끝에서 십자가를 지는데, 너희는 불을 내려 너희 힘을 입증하고자 하느냐.

준엄한 이 예수님의 음성은 힘을 숭상하고 인간과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웁니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 조각가, 도예가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힙니다. 가톨릭 신앙 배경을 가졌던 그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구가 참 인상적입니다.

“Lord, protect me from what I want(주여,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원하는 것들’의 ‘횡포’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에 끌려다니다 ‘하나님 창조 형상으로서의 나다움’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치욕적인 로마 지배에서 벗어나 다윗의 영광을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보게 되자 예수님께서 여태까지 들려주신 메시지, 십자가의 길에 대한 가르침이 그들에게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의 횡포에 의해 ‘제자다움’의 길을 벗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욕망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힘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힘으로 누르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살리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가정, 일터, 교회,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살리는 사람입니까? 피조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리는 사람으로 주님 주신 자연 만물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욕망을 이루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습관을 내려놓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서 힘과 용기를 얻고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들어가던 그들의 인생에 참 생기가 회복될 것입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 각종 질병과 전염병의 확산은 욕망 달성을 위해 폭주하는 우리에게 ‘살리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피조 세계의 호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그런 우리로 인해 우리의 이웃들이, 교회가, 이 땅 곳곳이 더욱 아름답게 살아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순영 목사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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