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1959년에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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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이고,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역사는 과거의 일을 기록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거를 지금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를 통해 과거의 그 모습을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라는 눈을 통하여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모자이크처럼 짜맞추고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1959년에 있었던 일을 통하여 전국장로회연합회의 창립의 의미를 생각하여 보려고 합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국교회의 각 교단의 재건 운동은 1950년대에 와서 교단의 분열로 나타났습니다. 장로교의 경우 1952년 신사참배 회개문제로 고신 측이, 1953년 신학적 노선의 차이로 기장 측이, 그리고 1959년에는 통합과 합동으로 나뉘는 한국기독교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 총회신학교 부지와 관련된 사기사건, 경기노회 총대사건이 그 중요 이유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1959년 3월 8일 새문안교회에서는 26교회 50명이 참석하여 경기노회장로회 (현재 서울 노회를 중심으로 한 서울강북지역 노회) 창립총회가 있었습니다. 창립총회 후 동구릉에서 부부 동반 야유회를 가졌고, 그리고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삼각산 임마누엘수도원에서 제1회 전국장로회 수양회를 개최했습니다. 김홍전, 변홍규, 김응조, 이대영 목사 등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목사들이 강사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총회장은 총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계속 파행적으로 회의를 이끌다 비상정회를 선포하고 파국으로 치닫아 결국 교단은 연동(통합)과 승동(합동)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비상정회로 제44회 총회가 무산된 후 같은 날 장로 총대들은 대전 YMCA 강당에서 모여 전국장로연합회 준비위원회(위원장 고한규 장로)를 구성하였습니다. 창립준비위원회는 “교계의 화평을 저해하는 일체의 운동을 배척하고 독선주의 및 교권주의를 철저히 지양하고 복음전파에 공헌하며 교회 발전에 주력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전국장로연합회 준비위원회의 활동은 교단의 분열과 함께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창립총회를 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경기노회장로회도 교단의 분열과 함께 와해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1969년 9월 24일 부산 대성교회에서 전국장로연합회 발기회(회장 황관익 장로)가 새로 조직되고, 1972년 7월 7일 서울 마가의 다락방(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 회관)에서 17개 노회 55명의 총대가 참석하여 창립총회를 통해 전국장로회연합회는 탄생되었습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는 교단분열의 아픔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교단의 분열을 막아보자고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끝내 분열은 막지 못하였으며, 10년의 진통을 거쳐 오늘의 전국장로회연합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의 창립이 갖는 기본정신은 ‘하나 됨’입니다. 오늘 전국장로회연합회는 70개 지노회장로회와 한국장로신문 등 4개의 산하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큰 기구로 성장하였습니다. ‘하나 됨’을 기억하며 「COVID 19」 이후 다가오는 미래를 잘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지삼영 장로

<서울노회장로회장·금호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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