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활신앙을 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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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기독교 유일의 뿌리이며 기둥이다. 어느 종교도 부활을 교리화하거나 고백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만 부활을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다.

회복과 부활은 동일하지 않다. 회복이란 원래의 좋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고, 부활은 죽었던 생명이 다시 생명을 찾아 되살아나는 것이다. 즉, 완전히 죽었다가 완전히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다.(고전 15:2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사람의 부활이 된다는 것이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공교회의 고백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부활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고,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기독교는 부활신앙을 지키고 선포하기 위해 숱한 박해를 받아야 했고 순교의 피를 흘렸다. 회교도들은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없다. 빈 무덤이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 다시 사는 종교, 영원히 사는 종교, 생명의 종교이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부활신앙의 확립이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주신 최상의 은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과 생명의 부활을 믿는 것이 순수복음이고 신앙이다. 부활에 대해 아는 것은 신학이다. 그리고 신앙이 배제된 신학은 학문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신앙이다. 이 신앙이라야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부활을 선포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부활의 증인들은 옥중에서, 화형장에서, 맹수의 공격 앞에서, 박해자들의 창검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전했다.

한국교회는 다양하고 집요한 도전에 맞서고 있다. 그 여파로 영혼을 구원하려는 전도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시 전도의 포문을 열어야 한다. 혹자는 반기독교적 공세에 맞서 전도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끄러운 일을 한 일도, 가르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왜 주저해야 하는가를 반문하고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부활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네 약점은 신앙과 삶의 괴리가 깊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공동체다워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고백하는 사람다워야 한다.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는 말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될 때 밝은 사회가 될 것이고 정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고 옳은 나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이렇게 산다’라는 고백과 삶이 부활의 계절에 봄꽃처럼 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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