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복음전도의 DNA를 가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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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金翊顯) 장로님은 1869년 7월 7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다. 전도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도자로 알려진 그는 1910년 대부터 거의 매일 취사도구와 침구를 준비하여 전도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전도 지경은 안동을 넘어 상주, 문경, 의성, 예천, 영주, 청송 등 무척 넓었다. 그는 방문한 마을의 청년들에 의해 멍석에 말려 몰매를 맞기도 했으며, 식중독으로 길거리에 쓰러져 죽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또한 어떤 마을에서는 머슴처럼 집안일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한 지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계속 다른 땅으로 나아갔다. 

그가 복음을 전한 마을 중에는 복음화율이 무려 50%를 상회하는 곳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그의 전도열정은 예수를 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우리에게 강한 도전을 주고 있다.

김익현은 54세의 나이로 안동교회에서 장로로 임직을 받았다. 그가 이처럼 늦게 장로가 된 이유는 선교사들을 도와 복음을 전하고 개척한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기 때문이었다. 

충성스러운 복음전도자였던 그는 장로임직을 계기로 헌신적인 교회의 일꾼으로 변신했다. 

그는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돌본 경험을 토대로 경안노회 경내 교회들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더욱이 김 장로님은 장로의 정년 연령이 없던 1930년, 62세의 나이로 장로직에서 조기 은퇴한 후 안동성소병원을 땅 끝으로 생각하고 환자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일에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았다. 구령(救靈)에 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70세가 되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강력한 복음전도의 DNA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110년이 넘은 성소병원의 전도역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복음전도자로 알려져 있다. 겉사람은 후패해져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특히 그에게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 동시에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동 3·1만세운동 시 김익현 장로님이 치른 1년의 옥고(獄苦)는 당연한 것이었다. 대구법원 항소문에 따르면 김장로님은 일경(日警)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전한 진짜 예수의 사람이요 복음 전도자였다. 

또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결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가 멸망당하는 날까지 신사참배에 불참하여 여러 차례 구류를 당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김 장로님은 안동에 복음이 전해진 이래 130년의 안동 선교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복음전도자이다. 

그는 우리 안에 전도의 DNA가 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안동 땅의 복음화를 재촉하게 하는 고마운 분이다. 

복음의 발자취를 뚜렷이 남긴 김익현 장로님과 같은 믿음의 대선배가 호흡했던 이 안동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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