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동네 도서관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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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동네 도서관에 가기를 좋아한다. 규모로 따지면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 가장 크고 책도 많고 시설도 좋다. 그러나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투어 도서관을 만들고  예쁘게 꾸미고 있어서 볼만한 동네 도서관이 많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오래된 상가 안에 있어 외관은 별로지만 내부시설과 장서는 제법 갖추고 있어서 이용에 불편이 없다. 전문서적은 대학교 도서관과 같은 큰 도서관에 가야 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편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동네 도서관도 충분하다. 

필자가 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먼저 찾는 곳은 신간코너다. 오래 전에는 시내 대형서점에서 몇 시간씩 둘러보며 새로 나온 책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서점이 점차 사라지고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하게 되니 신간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욱 동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는 새로 나온 책들은 뜻밖의 작은 놀라움과 기쁨을 선물한다. 매일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선별하는 일은 사서의 몫이기 때문에 좋은 사서가 있는 도서관이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신간 코너를 돌아보는 중에 한 권의 책이 내 눈을 사로 잡았는데 레이몽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책이었다. 1950년대 프랑스가 사회주의에의 열정이 불타던 시절 대다수의 지식인은 모두 사회주의자였는데, 레이몽 아롱만은 일찌기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우파 지식인이었다. 장 폴 싸르트르와 레이몽 아롱이 벌인 치열한 이념논쟁은 유명하다. 

1950년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프랑스 공산당이 3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 싸르트르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모두 사회주의에 환상을 가지고 소련을 지지하는 것과는 달리 레이몽 아롱만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미국을 지지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아롱은 지식인 사회에서 소외되어 외톨이 혹은 심지어는 ‘추방당한’ 지식이라고 불리울 만큼 철저하게 소수자로 남았다. 

그런데 그 레이몽 아롱이 최근 프랑스에서 재조명을 받으면서 1955년 출간된 그의 대표 저서인 『지식인의 아편』이 다시 간행되는 등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까지 다시 번역 출판될 정도로 레이몽 아롱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복권된 셈이다. 싸르트르가 창간했던 『리베라시옹』지는 2017년에 “슬프다!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싸르트르의 정치적 판단의 실수를 지적하고 아롱의 냉철한 이성이 옳았음을 선언할 정도인 것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시 읽는 동안 내내 필자는 큰 감회에 사로잡혔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사회주의의 마력에 사로잡혀 있다가 레이몽 아롱이나 칼 포퍼와 같은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사회주의 비판을 보면서 서서히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한계를 바로 보지 못하는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의 전체주의가 힘을 얻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어떤 새로운 책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동네 도서관으로 행복한 발걸음을 옮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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