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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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서산에서 태어나 축구를 유난히 좋아한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에게 축구는 곧 인생이었다.

축구공만 보면 좋았고 축구만하면 너무 행복했다. 늘 축구만 생각하며 살던 그는 중학교 때 춘천으로 전학을 갔고 춘천고를 졸업한 후 명지대에 들어가 명지대를 축구명문인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명지대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해 2년간 복무 후 프로구단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출장하며 다섯골을 몰아친 그는 1986년 대한민국 U-23 브라질 축구대회 대표로도 뛰며 촉망받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부상을 당했다. 2번째 부상 후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일용직 막노동 헬스트레이너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시설관리인 등 투잡 쓰리잡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지게를 지고 공사판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봐 내심 위축되고 창피하기도 했단다. 왕년에 프로선수로 뛰던 자신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날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왕년에 뭘했건 처자식 입을거리 먹을거리 챙기지 못하는 놈팡이가 될바에야 지금 해야할 일을 하는게 중요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낮은 자세로 삶을 대하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공사판 막노동은 삶을 성찰하고 현재의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운동과 독서 만큼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고 막노동을 나가는 날에도 운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3시반에 일어나 개인운동을 했다. 두 아들이랑 운동은 같이 했지만 축구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이들 스스로 가르쳐 달라고 할때까지 기다렸다. 마음껏 뛰어놀던 아들은 축구를 택했다. 쉬운 길이 아님을 보통 각오로는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재차 묻고 확인했지만 어린 아들은 축구 앞에서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아들들에게 축구훈련을 혹독하게 시키자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집도 가난한데 애들이랑 운동장에서 공이나 차고 있다며 한심한 미친놈 소리는 늘 따라 붙었다. 그래서 축구는 나처럼 하면 안된다, 아이들에게 만큼은 정반대의 시스템을 갖추고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본기였다.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기와 인성이기에 꾸준하고 끈질긴 노력 감사와 존중의 마음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를 강조하며 두 아들의 축구를 직접 지도했고 유소년 축구 손축구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 그리고 세계적인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손흥정 성도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기본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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