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혜로운 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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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자고 깨면 말없이 살아갈 수 없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나비 생각은 꽃에 가 있고 쇠파리 생각은 오물에 가 있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인격, 교양, 지성, 학벌, 출생지 등이 나타난다. 말은 바로 사람이고 전 인간성을 보여준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처럼 말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세금 안낸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실수하게 된다. 한번 해버린 말은 쏟아놓은 물과 같아서 되 담을 수가 없다. 교회에서 목사 설교, 장로 기도는 아주 조심스럽게 은혜롭게 해야 한다. 성경은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일깨워 준다. 더러운 말은 상처 주는 말, 음담패설, 거친 농담, 악담 같은 말이다.

특히 말로 받은 상처는 오래 낫지 않는다. 매 맞은 상처는 약 바르면 곧 낫는다. 이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잠언 16장 24절에선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선한 말이야말로 착하고 덕스럽고 은혜로워 마음이 꿀송이처럼 달고 그 뼈를 건강하게 해주는 양약이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중에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이런 정 깊은 말은 듣는 상대방에게 기쁨과 평화의 양약이 될 것이다. 어찌 은혜로운 말이 아니겠는가. 분노를 일으키는 말은 불화와 파괴를 동반한다. 1970년대 대구, 어느 카바레 종업원 하나가 “이 돈도 없는 시골 촌놈이”라고 격하게 무시한 말로 출입을 막자 분노한 청년은 휘발유를 사다 그 큰 술집을 불태워 버렸다. 격한 말 한마디가 남긴 비극이다. 더디 노하고 선한 말을 써야 한다. 사람의 말이 거칠면 사회가 거칠고, 말이 순하고 밝으면 사회도 순하고 밝다.

말은 나라의 흥망성쇠와도 관계있다. 세종의 한글정신을 밝혀 사신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느니라”라고 말씀했다. 주 선생 제자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은 일제시대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말씀하며 우리말을 앞장서 지켰다. 우리말은 광복 이후 6.25를 거치면서 영어가 홍수처럼 밀려와 오늘날 우리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쉬운 우리말을 곱고 바르게 써서 밝은 사회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우리말을 사랑하여 쉬운 한글로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우리말로 찬송 부르게 하여 한국이 토속신앙 미신의 무지에서 깨어난 것이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의 언더우드학당 제자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은 애국가를 지어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웠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원래 세계 언어는 하나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하여 바벨탑을 높이 쌓는 교만을 보여 하나님은 교만 죄악에 언어혼란의 벌을 주셨다. 그 때문에 동서양 언어와 문자가 나라마다 다른 것이다. 우리는 조상이 대대로 써온 한국말을 쓰고 말하는, 한글나라 한글겨레가 된 것이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을 잃을 뻔했으나 우리말과 글을 하나님이 지켜 주셨다.

우리말을 일상에서 어떻게 쓰며 소통하고 살아갈 것인가는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가정에서 부부간의 언어, 자녀와 언어, 교회 성도간의 언어, 직장에서의 언어, 사회에서의 언어생활에서 국민 모두가 빛과 소금이 되는 말, 온유하고 겸손한 말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나라를 이루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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