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기농으로 여는 왕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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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흐르는 쌀밥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담는다. 새벽녘 동쪽 산 위로 살짝 올라온 해처럼 밥그릇 위로 오른 밥에서 번제를 드리듯 다소곳하게 김이 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하나님처럼 밥그릇을 들고 밥내를 즐긴다. 위에서부터 식욕이 올라온다. 침을 한번 삼키고 크게 한술을 뜬다. 꼭꼭 씹을 때 이에서는 쫀득한 식감이, 혀에는 기름진 윤기와 단맛이 느껴진다. 목으로 넘기기 아까운 맛이다. 

다음은 쌈을 싸 먹을 차례다. 텃밭에서 갓 뜯은 상추가 깨끗하게 목욕을 한 후 그릇에 수북하게 담겨 있다. 한술 떠서 상추 한 장 위에 얹었다. 집에서 담근 된장이 밥과 어우러질 양을 젓가락으로 넣고 설날 한복 허리춤에 찬 복주머니 모양으로 싸서 입에 넣는다. 아삭거리는 식감과 찰진 밥맛이 구수하고 짭짤한 된장과 어울려 입안을 감싼다. 행복한 밥상이다.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8년을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는 정원지기의 꿈을 꾸며 2021년에 농가에서 농사를 배웠다. 유기농의 대부이신 고 원경선 선생님의 막내 사위 김준권 선생님께 농사를 배우며 몸과 마음이 성장했다. 누가 물었다. 농사를 배운 후 농사를 잘 짓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겨우 1년, 그것도 농번기만 계산하면 7개월인데 어떻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신대원을 졸업한 후 교회 안에서 생활한 팔자에게 노동이 필요한 농사는 인생에서 끼어들 일이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활동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를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발견한 후 대책 없이 귀농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충주 엄정면에 위치한 총회농촌선교센터에 오게 되었다.

충주로 이사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텃밭 만들기였다. 집에서 문을 열면 쌈채소, 파, 시금치와 같이 잘 먹는 채소를, 센터 초입에는 김장을 위해 배추를 심었다. 내가 만든 텃밭을 보는 사람마다 두 가지를 물어본다. 첫 번째는 텃밭 모양이고 두 번째는 벌레다. 나는 밭고랑을 일렬로 만들지 않고 해가 사방으로 빛을 비추는 모양으로 두둑을 세웠다. 풀을 잡기 위해 비닐 대신 자른 풀로 두텁게 멀칭을 해서 보온, 보습, 제초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살충제 대신 손으로 벌레를 잡고, 벌레가 싫어하는 에센셜 오일과 난황유 등을 사용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하루나 이틀 밭을 돌보지 못하곤 한다. 그러면 여지없이 벌레들이 배추에 불규칙한 구멍을 내고 있다. 유기농업의 어려움이다. 벌레 먹지 않고 때깔 좋은 채소를 원하는 도시소비자에게는 불합격인 배추다. 잎 위로 초록의 똥을 누고 기어가는 벌레는 내 밥상의 안전을 보증하는 기미상궁(氣味尙宮)이다. 기미상궁의 시중을 받아 안전한 밥상에 배춧국이 오른다. 나는 매일 왕의 밥상을 대한다. 

루미의 잠언집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왕의 밥상에서 의심을 하거나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은 배은망덕이다.’

의심을 하면서 먹는다는 건 맛없는 음식은 아닌지, 먹지 못할 것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하면서 음식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말한다. 반대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은 극심한 허기나 식탐 때문일 것이다. 이 양극단은 왜 배은망덕일까?

농사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씨앗이 발아해서 모종으로, 그 모종이 자라 열매가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의 땀이 필요한지 체험하고 있다. 곡식과 채소가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 밥상이 진수성찬이든, 소박하든 상관없이 왕의 밥상이라 불러야 한다. 그런 소중한 밥상 앞에서 음식을 투정하는 것도, 급하게 입 속으로 털어넣는 것도 배은망덕한 일이다. 

총회농촌선교센터의 원장으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 농촌은 유기농을 실천하고, 농촌교회는 유기농산물을 도시교회와 연결해 판로를 열어주고, 도시교회는 건강한 먹거리와 농촌과 농촌교회를 통해 쉼과 안식을 얻는 생태적 순환고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서 ‘유기농으로 여는 왕의 밥상’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이원영 목사

<총회농촌선교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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