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산다는 건 기다림이다

Google+ LinkedIn Katalk +

얼마전 엘레지(Elegy)의 여왕 이미자 가수의 ‘동백아가씨(冬柏아가씨)’란 노래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애타는 사랑 이야기다. 차가운 바람맞고, 하얀 눈을 맞으면서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의 모습이 뜨거운 심장, 붉은 중심으로 십자가 하나 달랑 가슴에 품고 그리운 주님을 기다리는 일종의 기독교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고 할까. 그렇다. 사랑도, 신앙도, 산다는 것도 일종의 기다림이다. 삶을 지탱하는 것이 기다림이라고 할까나.

2023년 새 달력을 집에 걸고, 끝까지 다 못 쓸 다이어리도 준비했다. 하지만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의 삶의 노래는 곤고 하기만 하다. 고단한 하루에 쉼표조차 찍기 버거운 날들이라고 아우성이다. 지난 한 해 버티기에도 몸과 정신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으고도 부족했다. 마치 손발이 묶인 듯 마음이 막혔고, 내 마음도 살뜰히 살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시대를 살아가며 추위를 견뎌내는 힘은 정작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을 말이다. 공동체에서 나의 의견을 끝까지 말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은 필수적이다. 나의 의견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똑같이 소중하므로 잘 듣고 경청하는 연습이 필수적이다. 규칙 없이 혼자 돋보이려는 것이 아닌, 규칙을 먼저 지키면 얼마든지 나의 차례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움이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필자는 성공이나 목표지향을 별로 안 좋아한다.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좋아한다. 조용히 천천히 제대로, 성장보다는 성숙을, 삶의 양보다는 질을, 속도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채워가는 그렇게 행복한 문화공동체 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언제 어떻게 누굴 만나든 서로를 바로 알기 위해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기다림이 헤어짐이 되거나 행복이 될 수 있다. 

창 너머 마른 꽃가지 위에 하얀 서릿발이 내렸다. 창을 넘어 스며든 바람이 무심히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내 마음에 작은 인연이 생겼다 지나간 듯 가슴 아프다. 허물을 벗고 자라는 갑각류처럼 사람도 성장하는 순간이 가장 많이 상처받고 약해지는 시기다. 스치기만 해도 상처받을 것 같은 힘든 순간이지만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 그래도 성장할 수 있다. 인생이 어쩌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일말의 기대감 그래도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하다. 사랑을 믿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오늘도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기다림을 시작한다. 기다림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려면 낙심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참 고통스럽다. 찾아올 사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현재의 나의 나 된 것은 순전히 은혜다. 참고 견디고 응원하고 기다려준 이들 덕분이다. 

지금의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설 명절이 지나고 이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傳令) 입춘(立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쉽게 지나쳐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다려 볼 일이다. 절망은 크고 희망은 작지만 우리는 희망에 더 시선을 빼앗겨야 한다. 그 용기로 딛고 일어나 끝끝내 희망과 마주해야 하리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오랜 기다림 그 끝에 다정히 손 내밀면 이 마음 받아 줄꺼나. 기다림의 미학을 믿고 너무 서두르지 않도록 하자. 지금 무엇을 기다리든, 누군가를 기다리든, 그 기다림 끝에는 미소 짓는 일이 생기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이효상 목사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