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그림에서 배우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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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요즘 수채화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지낸다. 완전 초보라서 아직 작품이라고 할만한 그림을 그려보지는 못했지만 그림의 기초를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물의 형태를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빛의 방향을 따라 그림자와 빛을 적절히 배치하는 방법, 사물이 우리 눈에 보이는 원리를 표현하는 원근법 등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색채를 다루는 것은 더 어렵다. 초보자에게는 원하는 색을 찾아서 만들어 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다양한 색의 명도와 채도까지 고려하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삼원색의 배합비율에 따라 색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색상은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연의 색을 완벽하게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유화나 다른 채색화보다 수채화를 특별히 더 좋아한다. 수채화는 투명하고 담백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색이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만들어 내는 조화가 환상적이다. 그런데 수채화가 특별히 어려운 것은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적당히 마르기 전에 새로운 색을 입혀야 자연스럽게 번져서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붓질의 속도감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즐거움도 좋지만 색채가 주는 순수한 기쁨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색은 파랑색이다. 진한 코발트색으로 칠한 하늘은 청량감으로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깊고 푸른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마린 블루는 서늘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감을 자아낸다. 앙리 마티스는 “사람은 색채로부터 마법과 같은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색채는 마법과 같다. 정열, 환희, 우울과 같은 인간의 모든 감정은 다 색채로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수채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예측불가능하고 불규칙한 번짐에 있다. 몇 번의 붓질로 사물이 갖는 오묘하고 다양한 색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데 그 결과는 의도할 수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다만 무심하게 쓱 붓이 지나가면 종이에 배인 물이 알아서 나머지 작업을 수행하여 자연의 다양한 형태와 색상을 표현하게 된다. 정밀한 채색이 없이도 그저 몇 번의 간단한 붓놀림으로 꽃과 나무와 사람과 구름과 집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채화는 동양의 수묵화와도 닮았다.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일상의 생활에서 수많은 사물을 접하면서도 그 대상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관찰해왔다는 사실이 그렇다.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서 대상의 세밀한 형태, 빛의 명암, 색채 등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놀랍게도 그 대상의 본질이 신기루와 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루의 어느 때인가에 따라 다르고, 빛의 각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무엇보다도 그리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대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비단 주변의 사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바로 그렇다. 객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백이면 백사람 다 다르게 현실을 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의 마음의 반영이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이 회색빛으로 보이고, 마음이 기쁘면 세상이 더 밝게 보인다. 같은 꽃을 그려도 화가마다 다르게 그리는 것은 서로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자신이 그려가는 그림과 같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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