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내 딸아! 살면서 외롭고 괴로울 땐, 이 찬송가를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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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쓸쓸히 웃으며 창밖 먼 산을 힘없이 바라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글쎄 말이다 어려운 일일테지. 부질없는 짓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내 마음이 좀 편해질 거 같아서.” 춘원은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를 베며, 세월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늘 반성하며 살았다.

또 춘원은 풍금을 치고, 10살 된 막내 딸 정화는 노래를 불렀다. “아빠, 오늘도 또 그 노래야? 응, 부를께!” 머리를 곱게 뒤로 빗어 넘기고 노란 원피스에 두 손은 가지런히 얌전하게 앞으로 모으고 막내 딸 정화는 아버지의 십팔번인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338장)’을 오늘도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중략)…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 (중략)

이럴 때마다 딸 정화는 노래를 다 부르고는 뛰어 가, 아버지 품에 안긴다. 아버지는 딸을 꼭 안아준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빰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내곤 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앞으로 살면서 괴로울 때는 이 찬송가를 불러라! 아빠는 어느 곳에 있든, 너를 응원할께!”

춘원은 정화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유언처럼 말하곤 했다. 그 후, 아버지 춘원은 납북되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 없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일시 귀국을 한 이정화 교수는 조선일보 어느 기자와 이렇게 인터뷰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시골 ‘사릉’집에서 꽤 오래 살았어요. 엄마와 언니, 그리고 오빠는 서울 효자동 집에서 살았지요. 엄마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릉’집에는 거의 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늘 혼자였어요.

그때 나는 아버지가 왜 밤마다 그렇게 울었는지를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어요. 세월이 흐른 먼 훗날, 그때의 아버지의 눈물과 한숨과 돌베개를 베고 제대로 잠을 못이루시던 그 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때 아버지는 나를 꼭 껴안아 주면서 종종 이렇게 말했어요. “정화야! 너 이 다음에 커서 살아갈 때, 외롭고 괴로운 일 있을 때는, 나처럼 풍금을 치면서 이 찬송가(338장)를 불러라. 그래도 성이 안차면, 이 성경책을 읽거라”하면서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손때 묻은 성경책을 건네주었다 한다. 정화는 지금도 아버지의 그 성경책을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다는 인터뷰다.

모윤숙이 ‘사릉’에 춘원을 찾아 가다

여기는 남양주 춘원이 몸소 지은 ‘사릉’ 집이다. 아침부터 까치가 요란스럽게 울어 대고 있었다. 춘원이 딸과 함께 지내던 어느 따뜻한 봄날,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을 때, 이곳 남양주 ‘사릉’집에 정말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왔다.

“이게 누구야! 숙이 아냐?” ‘렌의 애가’의 작가 모윤숙이, 춘원을 불쑥 찾아온 것이다. 모윤숙에게 ‘영운’이라는 아호를 지어 준 춘원이지만, 그녀를 만나면 춘원은 ‘영운’ 대신, 늘 ‘숙’이라 불렀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죠? 찾아 오기가 영 쉽지 않네요. 요즘 저도 늘 불편한 상태에 있으니깐요….”

모윤숙도 춘원과 함께 친일로 고초를 당했던 처지다. 하얀 투피스와 머리에 살짝 얹은 노란 모자가 봄날 개나리 빛과 잘 어울려, 이날따라 모윤숙은 참 예뻐 보였다. “숙은 여전히 아름답군! 얼굴색도 매우 좋아 보이고….”

춘원은 모윤숙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몹시 기뻐하는 춘원이다. “선생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네요. 괜찮지요?” “그렇게 보여? 다행이네.” “숙은 이 사릉에는 처음이지?” “네, 처음이에요. 진즉 와 보고 싶어도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가 무서워서….” “그래 숙이 요즘 나라일을 보느라고 많이 바쁠 텐데, 시간을 내줘서 정말 고맙군.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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