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변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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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이후 50일이 되는 날이다. 성령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임재로 이어지는 절기 중 하나이다. 특히 교회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절기이지만, 대다수의 교회들이 성경의 절기인 성령강림주일을 외면하고 있다. 기념주일의 필요성도 대두되겠지만, 교회의 공교회성을 위해서도 성령강림주일과 성령의 역사는 세워가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킨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자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는데, 이런 베드로가 성령으로 인해 변하게 된다. 전에는 대제사장 집의 여종의 말에도 무서워 떨었지만 성령으로 변화된 이후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이다. 보배 같은 말씀을 귀로 듣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만져도 달라지지 않았던 제자들도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 진정한 변화를 보였다. 베드로와 제자들만 변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베드로와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각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 결과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성령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성도가 실제적인 삶 속에서 거룩함을 보이는 것은 우리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또한, 베드로는 성전에 올라 갈 때에 성전 미문에서 앉아 구걸하는 자를 일으켜 세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잃어버린 자, 소외된 자, 억압받던 자들에 대해 주목함으로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문 앞에 앉아 있던 자들은 일상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성전 예배의 모습에서 제외된 자였지만, 성령의 관점에서는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인 것이다. 성령은 분명 무익한 사람을 유익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을 부어준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그 모습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서서 전 세계를 향하는 보편적 복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와 역사를 뒤흔들고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포기한 것들을 되살려 낸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지만, 성령은 핵폭탄보다도 더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요, 회복과 치유를 이뤄내는 거부할 수 없는 은혜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어두운 상황과 힘든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그것이 절망과 아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돕고 어렵고 힘든 이 시대를 회복시키고 구원해 주신다. 성령은 분명 어렵고 힘든 시대를 변화시킨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코로나를 겪은 시기에도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말한다.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성령의 운동을 기억해 내고, 편견과 아집을 성경의 진리로 왜곡 하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통찰력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떠나는 선교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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