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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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 수확을 한 농부라면 조금이라도 그 의미가 와 닿겠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에게 맥추감사주일은 특별한 감사도 없이 감사헌금을 내야하는 날, 특히나 요즘처럼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때에는 더 없이 부담스러운 날이라 하겠다. 그러나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확한 것이 있으니 내놓으라고 강요하시는 날이 아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3대 절기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나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매년 세 번씩 주 앞에 얼굴을 보이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숫자적 의미가 아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해서 지키는 절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1년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다. 그리고 수장절은 1년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모든 추수를 마감하고 곡식을 창고에 거둬들이게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일 년의 시작과 끝의 중간 시기에 밀이나 보리를 추수하게 됨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이다. 이렇듯 세 번의 절기는 1년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 즉 1년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내라는 의미를 담는다.  

오늘 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맥추감사주일은 지난 상반기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를 고백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상반기의 시간을 돌아보며 충분한 감사를 하나님께 표하고 있는가? 비록 팬데믹의 긴 터널은 지나왔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퍽퍽하고 어렵기만 하다. 정치, 경제, 사회 어디를 보아도 시원한 구석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감사할 것 하나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되면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의 제목들을 얼마나 많이 땅에 묻어버리고 살아가는가? 영어의 ‘감사하다(thank)’는 ‘생각하다(think)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에서 출발한다. 많이 가진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깨달을 때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해 냈다. 광야 여정에서도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다.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배반하였다. 그들의 결론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애굽의 노예생활로의 회귀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감사로 해석되지 않으면 그저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만다. 또 우리에게 있어 그분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쓸모없는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 불과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는 나라를 잃고 소유를 잃고 아들은 전장으로, 딸은 위안부로 보내져 잃어버렸다. 이름도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헌신된 기독인들을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고, 악한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빛을 잃지 않고 길을 인도해주셨다. IMF사태로 쌓아 놓은 것을 몽땅 잃고 빚더미에 올라 희망을 잃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에게 힘을 합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국의 일꾼으로 세우셨다. 광장에서 맨손을 기도의 손으로 맞잡게 하셨고 천막 속 예배로 부흥케 하셨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지옥일 수 있는가?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라.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소망의 미래를 열어주실 것이다.  

임준형 목사

<삼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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