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을은 기독교 문화의 정착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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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다. 성숙과 거둠의 변양(變樣)을 볼 수 있는 멋진 계절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가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가끔씩 살아온 팔십 평생을 회고하며 피안(彼岸)의 새로움에 대해 농부의 기대와 견줘볼 때가 있다. 다시 말해 어릴 때부터 부르짖은 내 신앙의 결과가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다가올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믿음의 급부적(給付的)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일지? 이렇게 수도 없이 그려보는 미래의 함수에 대하여 경외함을 금치 못하는 시기가 가을인 것이다. 이것은 필자뿐만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 들뜬 맘으로 가을을 기다린다. 농부들은 자기들이 재배한 작물들을 보살피며 벌레도 잡아주고 병든 놈은 약을 쳐주고 비바람에 쓰러진 놈은 다시 세워준다. 그렇게 농부들은 심은 농작물을 여름 내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보살펴 키운다. 가을은 농부들이 보살펴 키운 농작물들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이와 같이 뿌린 수고의 땀을 거두는 계절이다.

기독교인들의 가을은 자신을 돌이켜 숙고(熟考)하는 계절이다. 과연 내가 부지런한 농부와 같이 기쁜 맘으로 수확을 할 수 있을까? 가을이 왔다고 낫을 들고 기쁜 맘으로 들로 나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믿음은 이와 같이 가을을 맞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 따라서 믿음은 젊어 열심을 내고 늙으면 그 결과를 기다린다는 수확의 이치와 같다 하겠다. 

그러나 성경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고 했다. 신은 인간의 몫을 선악으로 대별한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운다는 데 누구나 주목해야 한다. 가을을 맞는 기독교인들의 자세는 이점을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숨어 있는 이 씨를 찾아내야 한다. 주께서 이르시되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고 하셨다. 정말 무섭고 떨리는 말씀이다. 권속들 모두는 주의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가을과 기독교인의 교양(敎養)은 첫째도 둘째도 이 계시적 음성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이다. 논어(論語)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아무나 어울리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이단사이비 종교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교회의 지도자 같은데 행동은 삯꾼 노릇을 하는 엉터리들도 경계의 대상이다. 이들은 말로만 그럴싸하게 외치는 충성스런 종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오직 예수를 팔아먹는 사이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이비 이단들은 모두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사탄의 노름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가치관이 혼돈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때문에 주위를 살펴 각별히 몸가짐을 바르게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가을은 아름다운 기독교문화의 정착을 생각할 때다. 어느 국가든 훌륭한 인류문화의 정착은 모두 한 세대가 남긴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편린(片鱗)들이다. 우리들이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문화의 정착을 원한다면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본질적이고 절대적(絶對的)인 컬처리즘(culturism)을 구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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