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성경의 권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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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성경 안에 다 보존하셨다. 교황청에서는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확증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는 역할을 하고, 성경을 보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은 교회의 전통을 중시한다. 그러나 교황청의 승인에 의해 성경의 권위가 확증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 대해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 돌이 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보다 교리를 앞에 보여 준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잘못된 주장이다. 5세기의 위대한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us, AD 354~430)은 “오직 성경만이 진리와 믿음을 갖게 해 준다”고 성경의 권위만을 확증했다.

사람의 마음을 내적으로 강화하고 조명해 주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교리를 만드신 분은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를 확신해야만 믿음이 생긴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에서 얻어진다. ‘성경의 내적 증거’에 의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확고하지만 이를 논증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성령의 내적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성령의 증거는 일체의 이론을 능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의 증인이 되시는 것처럼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우리에게 확신을 주신다.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인장(印章)과 보증처럼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을 조명(照明)해 주어야 한다. 성령의 조명을 받은 심령은 의심하거나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없다. 성령의 조명을 받는 사람은 전적으로 성경을 신뢰한다. 성경을 이성(理性)에 종속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성령의 확증이 있어야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견고한 확신이다.

성령의 확증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른다.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 성경에 하나님의 신적 위엄이 살아서 숨쉬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어진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참 믿음을 인(印)치신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구별해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 이 특권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접붙임을 받기 전에는 아무라도 무지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비밀은 오직 받은 자들만의 것’이다. (마 13:11)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구원에 이르는 지식은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것으로는 생명의 진리를 배울 수 없다. 성경을 통해서만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있고 구속의 은혜를 붙잡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창조주 하나님, 중보자 구속주, 이를 알도록 인도하고 적용해 주시는 성령님을 보여 준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 에밀 브루너(E Brunner) 등은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각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정통 개혁 신학에서는 취할 바가 전혀 못 된다. 정통 개혁 교회가 따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Westminster Confession, 1643~1649)은 성경을 영적 권위로 받아들이며 성경을 믿고  순종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근거, 내용의 신령함, 교훈의 효험, 내용의 일치성, 완전성, 내용 전체의 목표,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히 보여 준다.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진리이다. 이는 신적(神的) 권위를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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