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선행도 몸에 배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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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고 나눈다는 것을 아주 거창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주 사소한 일 하나가 얼마나 큰 베풂이 되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간다. 얼마 전 아침, 지하철 안이 복잡하고 빈 자리가 없었다. 겨우 기댈 자리를 얻어 노인석 앞에 서 있는데 힘겨운 걸음으로 한 노인이 다가왔다. 앞에 앉았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서 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얼핏 보아서는 일어난 그 노인이 더 연배가 높은 것 같아 흠칫 놀랐다. 두 노인이 한동안 서로 자리를 양보하며 서 있었다. 

가끔 보는 풍경이긴 하지만 그날 아침은 더 인상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자신보다 더 불편해 보이는 노인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는 그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래, 바로 저렇게 늙어가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가슴을 밀고 올라온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선행이다. 나눔과 베풂이란 미덕 또한 마찬가지다. 안 해 보면 생각이 못 미쳐서도 못하고 어색해서도 못하는 게 선행일지도 모른다. 예배 중에 기침이 멎지 않아 난감하던 차에 옆자리의 젊은 성도가 건네주는 사탕 한 알의 고마움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받은 대로 갚는다 했던가? 어느 날 전철 안에서 옆의 노인이 기침을 하기에 얼른 사탕을 건넸더니 손사래를 치며 받지를 않아서 얼마나 계면쩍었는지 모른다. 

호의는 일단 받아놓고 볼일이라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또 배우는 날이었다. 호의가 무시당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리라는 또 하나의 덤까지 터득한 순간이기도 했다. 안 받는 사정이나 이유가 있겠지. 역지사지는 이런 때도 특효약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 쪽으로 가는데 차비가 없으니 조금만 도와 달라고 한 여인이 손을 내민다. 지갑을 열다가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별생각 없이 지나쳐 버렸다. 아차 저 여인이 정말 차비가 없어서 어렵게 손 내밀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을 못 믿는 이 못된 버릇을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연이어 고개를 내미는 생각, 그것이 인색한 마음 때문은 아닌지…. 남의 처지를 헤아려 보지 않는 교만과 왜 헛된 돈을 쓰냐는 인색한 두 생각의 합작일지도 모른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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