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동네 만물전에서

Google+ LinkedIn Katalk +

동네 만물전에서 등산용 알루미늄 스틱 한 개를 샀다. 누구나 아는 상점체인이지만 특정 업체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삼가야 하기에 여기서는 그냥 고풍스럽게 ‘만물전’이라 하겠다. 집에서 이 점포까지는 왕복 5천 보쯤 되고 거기다 4층에 걸친 매장을 오르내리노라면 몇백 보가 보태지기에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일하는 사람이 직장 밖에서 제일 많이 찾는 곳은 물론 식당과 커피숍인데 때로는 시장이나 마트에도 가고 어쩌다가 의류, 신발 매장에도 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물건이 아쉬워지면 이 만물전에 들린다. 아, 놀라워라. 참말로 없는 것이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있어야 하는구나! 필요해서 찾아서 사는 것도 있지만 진열된 물건을 보고 그냥 갖고 싶어 집어 들기도 한다. 찾는 게 없다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전 매대 사이 좁은 통로를 서로 몸을 부딪히며 물건들을 살피고 골라서 사는 수많은 남녀노소 고객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거실과 주방과 침실과 사무실에서 누리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생활의 여러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건들이 필요하지만 거꾸로 요런 온갖 물건들이 사람의 욕구를 더욱 더 유발하는게 아닌가. 아무튼 여기에 온 사람들은 소소하나마 당장 이뤄야 할 목적, 즉 집안의 무엇을 고치거나 바꾸거나 더 예쁘게 한다는 과제를 갖고 있고 그 일을 하려고 넓은 매장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그게 귀찮거나 짜증나지 않는다. 

만물전 4개 층 매장을 가득 채운 생활용품들은 아마 수천 가지 종류에 이를 것인데 가격은 500원에서 시작해 1-2천 원 짜리가 대종을 이루고 제일 비싼 것이래야 내가 사 들고 나온 5천 원짜리 스틱 정도다. 다른 ‘고가품’으로는 사용 후 재생 골프공 10개 포장한 것이 역시 5천 원 가격표가 붙어있다. 회사 사장을 비롯해 스태프들이 일 년 내내 세계 각처를 돌아다니며 새 상품을 발굴해 현지주문을 하거나 국내에 위탁생산을 하고 외국산, 국산 제품들을 대규모 물류센터에서 모아 전국 매장으로 나눠 보내 고객의 손에 이른다. 

이 만물전에서 취급되는 것들은 사람의 의식주를 보완해서 다양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품들이지만 세상에는 부를 과시하기 위한 물건들도 많고 또 한편으로는 타인과 타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살상무기류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런가 하면 인체의 고장을 고쳐주는 고마운 초정밀 의료기구에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 개발되는 반도체 제품들…. 

하나님은 궁창과 물과 육지를 지으신 후 각종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신 다음에 사람을 만드셔서 이들을 지배하며 살도록 하셨다. 자신에게 부여된 재능을 가지고 인류는 물건들을 발명하고 더 편하게 살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구들을 고안하고 개량해 왔다. 사람은 불에서 전기로 또 원자력으로 계속 능력을 키워가다가 이젠 인공지능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인데 이제 거꾸로 사람의 능력이 필요라는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인생의 행복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능력의 과시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세상만물이 오늘 동네 만물전 수준에 멈추면 좋겠는데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어이하랴. 어떤 결과가 예비되어 있을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