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 (22)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아 교회음악
진젠도르프(Nikolas Ludwig Zinzendorf, 1700-1760)는 18세기 독일개신교의 개혁가이자 헤른후트 형제단의 창시자이다. 독일 드레스덴 태생인 진젠도르프는 경건주의가 강했던 할레 대학 출신으로 프랑케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비텐베르크 대학교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박물관에서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명화에 쓰인 글귀를 보고 성령 충만해 “저는 오랫동안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주님을 위해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체코 일부 지역인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망명자들이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 머물렀을 때 헤른후트(Herrnhut) 마을을 건설하도록 허락했다. 헤른후트에서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다는 소식에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진젠도르프도 모든 공직을 사임하고 모라비아 형제단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노예 제도를 비판했으며, 모라비아 선교사를 덴마크의 세인트 토마스 식민지로 보내 노예를 위한 사역을 지원하는 등 개신교 선교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라비아 형제회는 진젠도르프 백작으로 인해 ‘징슈툰덴’(Singstunden)이란 모라비아 음악 예배로도 유명하다. ‘징슈툰덴’은 거의 전적으로 회중이 부르는 찬송으로 구성된 예배이다.
진젠도르프는 노래는 마음의 종교를 위한 가장 진정한 언어라며, 기독교의 진리는 체계적인 신학이나 논쟁이 아니라 시와 노래를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고 믿었다. 진젠도르프는 회중이 참여하는 ‘징슈툰덴’을 위해 약 2천 편의 찬송 시를 짓고, 찬송가를 편집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진젠도르프와의 만남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 찬송가 403장 ‘영원하신 주님의’(“O ich armer Sünder, es ist wahr, ich bin’s”)는 러시아 찬송가(‘Sbornik Dubovnyh Pesen, Moskow’, 1984)에서 왔다고 되어있으나, 러시아어로 번역된 진젠도르프의 찬송 시를 우리말로 중역한 것이다.
이외에 저명한 스코틀랜드 태생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1771-1854)의 찬송 시 ‘영광 나라 천사들아’(118장), ‘시험 받을 때에’(343장)도 모라비아 찬송이다.
김명엽 장로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