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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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문, 5대를 이은 잊지 못할 하루

 “대학생 시절에 더 넓게, 깊게 보며 살아야 해”

손자와  함께 한 날… 해외까지 울러 퍼진 은혜 장면

사랑하는 딸 유빈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미국 보스턴에서 일인다역을 씩씩하게 해내면서 잘 살고 있다. 남편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를 마쳤고, 하버드대 포스트 닥터(post doctor) 과정을 3년간 거친 뒤 보스턴대학교(BU)에서 교수로 일했는데 뒤늦게 다시 도전해서 지금은 치과 의사가 됐다. 유빈이는 남편의 치과병원 운영을 맡아 하면서도 두 아들 잘 키우고 보스톤 온누리교회 사무장 일을 맡아 신앙생활에도 열심인 대견한 딸이다. 시집가기 전엔 늘 “아빠 같은 사람 만날거다”라고 하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이 세상에 아빠 같은 남편은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제일 복 받은 사람이다”라며 듣기 좋은 소리를 해줄 줄 아는 애굣덩어리다.

내 나이에 가장 큰 행복은 손자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외손자를 자주 못 보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손자 둘, 손녀 하나와는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큰 손자 중석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화제가 된 인공지능 챗봇인 ChatGPT(챗 지피티)를 써보고 나니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최첨단 기술을 익히고 사용하려면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최고급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앞서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었다. 자라는 동안에도 성실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온 아이가 그런 도전의식을 느낀다는 점이 대견했다. “어차피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니 대학생 시절에 넓고 크게 보는 시야를 가지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공부를 하라”고 해주었더니 중석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네 할아버지, 정말 그래야겠어요”라고 답했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10여 년 전 중석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일이 생각났다.

2012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소망교회에서 열렸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큰손자 중석이와 나는 뜻깊은 추억을 만들었다. 100주년 기념 예배의 개회를 선언하는 징을 치는 순서가 있었는데, 이 일을 나와 큰손자가 함께 맡았다. 내 할아버지 대부터 손자 대까지 5대를 이어왔다고 해서 ‘대를 이은 믿음의 가정’ 대표로 뽑힌 것이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포함한 2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동교회의 보물이라는 징을 내가 들고 손자 중석이가 세 번을 치자 일제히 기립해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징 소리를 신호로 기념 예배가 시작됐다. 행사가 끝난 후 많은 분들이 부러움과 축하의 인사를 해주었다.

이 행사가 더 의미 있었던 것은 손자와 내가 징을 치는 장면이 해외에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목사님들이 사진을 찍어 미국장로교회(PCUSA) 총회 보고서의 표지사진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 후 이 사진은 PCUSA 총회의 공식 달력 중 한 페이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날 손자에게 “너도 자라서 장로가 돼야지?”라고 어느 목사님이 칭찬을 해줬다. 중석이는 “네!”하고 크게 대답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3학년인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 다음에는 저도 데려가 주세요, 네?”하는데 그 말이 또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모른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손주들이 신앙 안에서 잘 자라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 대를 이어 신앙을 물려주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란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 성공과도 비교할 수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편 128:1~4)

오래 생각하던 숙제를 마치다

2007년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사회복지학과를 성공적으로 개설한 한일장신대 채플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양했다. 정장복 총장이 거듭 부탁해왔다.

“인생 선배이자 신앙의 선배로서, 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야 언제든지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 유익이 되는 강의가 되려면 어떤 내용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곧 사업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장로 은퇴도 준비해야 할 예순 여덟 살 나이에, ‘나는 어떻게 살았나?’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마치 거울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며칠을 고심하다 보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셨구나!”

사느라 바빠서, 또 알면서도 가슴에 새기지 못하고 지나갔던 일들이 하나씩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한일장신대 채플에 갔을 때 내 마음은 그렇게 뜨거워져 있었다.

막상 특강을 하려고 학생들 앞에 서자, 그들의 모습에 5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병든 몸으로 세상에 나가야 했던 ‘발버둥 쳐도 안 되나 보다’하고 눈물을 흘렸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채플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진솔한 나의 이야기를 했다.

“군대를 제대했는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취직이 안 되는 겁니다. 하도 답답해서 하나님께 ‘뭐든지 시켜 주시면 죽을 힘을 다해 하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올렸는데 바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업이 아니라 교회학교 교사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65세까지 40년간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동료 교사들과 나누었던 신앙의 교제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읽고 예배드릴 때마다 더 집중해 설교를 들은 것이 제 신앙생활의 기반이 됐습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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