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칸센 열차 속의 진풍경 (1)
자청한 고생 여행길
일본을 향한 첫 방문 길이 어렵게 열린 뒤부터 재일 교단에 속한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차츰 잦아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고 나 홀로 선교 여행을 하다 보면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들이 종종 일어난다. 이것 역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선교의 사명을 따라서 마땅히 치러야만 할 경험의 하나로 생각한다.
1993년 나는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동경 한인 교회에서 집회를 마친 다음 일본 나고야 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기로 일정을 짜 놓고 있었다. 때마침 나고야 교회에 시무하시는 황의생 목사님께서 동경에 회의하러 오셨다가 함께 신칸센 고속 열차를 타고 나고야로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목사님과 YMCA에서 만나 차를 나눈 뒤 배웅을 나온 김군식 총회장의 차편으로 동경역까지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신칸센 열차를 타기 위해 차표를 샀다.
그때 나는 제법 무거운 두 개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목사님은 가방 하나를 달라고 했으나 가방까지 드리는 것은 폐가 될까봐 극구 사양했다. 안내해 주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초청해 주시고 실로암 안과병원을 위한 헌금까지 해주시기로 한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에 가방까지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쪽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그 가방을 멘 편 손에 또 다른 가방 하나를 들고 한 손으로는 그 목사님의 팔을 잡고 따라갔다. 간신히 나고야 행 기차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가서야 잠깐 쉴 수가 있어서 아픈 팔과 어깨를 만지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미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서 식당 칸이 있는 열차를 기다리다 보니 세 대의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칸이 없는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앉을 좌석 칸이 제일 뒤칸이어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여러 칸을 건너야만 했다. 온몸에서 땀이 나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방을 메고 들고 따라가자니 가끔씩 의자에 부딪혀 우리가 찾는 좌석까지 가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지나가다 듣자니 나의 처지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딱하다’는 일본말이 들려 오곤 했다.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행복하기만 했다. 또한 그 결과로 개안 수술비용이나 특별헌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생각하니 비지땀을 흘리는 것쯤이야 싶었다.
“황 목사님, 얼마나 더 가야 해요?” 하면 “좀 더, 좀 더” 하면서 계속 나의 오른팔을 잡고 가는데 잠시나마 곤혹스럽기가 끝이 없는 듯했다. 드디어 좌석에 앉게 되자마자 나는 마치 사막을 건너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심경과도 같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꾹 참고 왔던 왼팔을 마사지해 주고 저린 손가락도 천천히 풀어 주었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애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느라 또 한번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도시락을 사서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시장기를 면하고서야 우리는 나고야 교회에 도착했다.
나고야 교회에서 받은 환대
나고야 교회 4층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한 곳에다가 여장을 풀었다. 그 방은 여전도 회원들이 매주일 모여 회의도 하고 쉬기도 하는 방이었다. 밤을 지샌 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나서 세면하기 위해 수도를 틀었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온수기가 고장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일본의 2월은 제법 추워서 찬물로 세수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행여나 하고 손수건을 찬물로 적신 후 히터 위에 올려놓았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찬물로 세면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조금 있으니까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으나 며칠을 더 참아야 한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나고야 교회 윤영혜 권사님이 아침 일찍 교회로 나를 찾아오셨기에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권사님, 온수가 나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하고 부탁했다. 깜짝 놀란 윤 권사님은 그 즉시 온수가 나올 수 있도록 양로원의 기관실 책임 직원을 불렀고 10여 분이 채 되기도 전에 온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 후로 따뜻하게 그 방을 이용하고 며칠을 잘 묵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왼쪽 어깨와 팔에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럴 적마다 그 팔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명상에 잠겼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통증을 느끼곤 한다.
나고야 교회에서 주일을 맞아 1, 2부 예배와 저녁예배 시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준비된 말씀을 교우들에게 선포했고, 때를 따라 성도의 교제도 나누게 되었다. 대화 시간을 통해 실로암 안과병원의 의료사역 소식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그 자리에는 실로암 안과병원에 기계 한 대를 기증해 주신 김광수 장로님이 동석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