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로 집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이를 가출(家出)이라하고, 어떤 경우는 출가(出家)로 말하기도 합니다. 앞뒤 글자가 바뀌었을뿐 집을 나간다는 의미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출이라 함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출가로 부를 땐 의미있는 시도로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 말씀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겠다고 집을 나간 비행 청소년은 가출했다 하고, 어떤 이상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절에 들어간 사람은 출가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가출과 출가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듯 보여집니다. 단지 집을 나가는 것이 목적인 경우는 가출이 되고,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출가가 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로 부임한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아내가 편지 한 통을 써 놓고 가출을 했습니다. 어린아이 넷을 두고 말입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목회에 열심을 다하며 성실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보기엔 영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참다 못한 아내가 집을 나간 것입니다.
여러 장으로 쓰여진 편지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간 날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 흔한 우유를 마음대로 먹일 수 없어 우유 반, 물 반을 타서 먹였다는 것입니다. 주 수입원도 없이 직장 그만두고 신학교를 갔으니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궁핍한줄은 저는 몰랐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놀란 저는 처갓집에 가 있는 아내를 데리고 오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여보 이렇게 어려웠으면 왜 내게 말을 하지 않았소?” 이어진 아내의 말이 나를 정신들게 했습니다. “야! 이 등신아 내가 그렇게 말하면 당신이 학교를 다녔겠냐?” 그렇지요, 만약 그때 집안 사정이 그 정도인걸 알았다면 아마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돈벌이하러 세상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아내는 가난하고 어려워도 남편이 신학에 몰두하게 하기 위해 가난을 친구삼아 아이들과 버티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의 목회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소중하지만 가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공동체가 가정임을 알고 가정 목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가정에선 목사가 아니라 그냥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어야함을 알았고, 그때부터 설거지나 빨래를 돕는 가사 도우미, 그리고 아내의 말을 경청하여 듣기….
이 작은 변화의 시작은 아내의 가출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가출이 의미 없이 그냥 집을 떠난 단순한 가출이 아니라 남편을 새로운 세계로 철들게 한 출가였다 생각합니다. 그 날 아내의 출가가 없었다면 아마 저는 평생 가정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날, 아내의 가출이 뜻을 정해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수도자의 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나를 깨우쳤으니 가출이 아닌 출가인 것이지요.
최경식 목사
<대구수성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