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련의 자리
바울이 다메섹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을 무렵, 갈릴리 분봉왕 헤톳 안티파스(Herod Antipas, 재위 주전 4년-주후 39년)는 아라비아 일대 나바테아인들의 영토를 침략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대규모 유대인의 정착지를 형성했습니다. 주후 34년의 일입니다. 나바테아의 아레타스 4세는 곧 용병들을 동원해 유대인들의 정착지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군사작전은 헤롯 안티파스의 부당한 침략 때문이라고 로마에 항변했습니다.
로마는 아레타스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로마는 이 일을 명분으로 헤롯 안티파스를 폐위시킨 뒤 지금의 프랑스, 갈리아의 리옹으로 보냈습니다. 아레타스는 이 일로 아라비아 광야 지대를 넘어 요단강 동쪽 전반 데가볼리(Decapolis)로 알려진 열 개 그리스인들의 도시를 특히 최북단에 있던 다메섹에서도 영향력을 떨치게 됩니다. 결국 나바테아와 데가볼리 일대에 들어와 살던 유대인들은 한편으로 아레타스에게 협력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게 자기 사명을 정립하는 한편으로 거기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거기서 아레타스를 비롯한 나바테아인들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입니다. 십중팔구 복음 전파와 관련된 문제였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아레타스의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축출 작전이 시작되자 그곳을 나와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도 회당으로 가서 거기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빠른 속도로 그의 혈육들 곧 유대인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행 9:21-22). 이때 유대인들은 나바테아인 통치자들과 함께 바울을 사로잡을 궁리를 했던 모양입니다(행 9:23, 고후 11:32). 결국 바울은 신실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행 9:24). 예수에게 사로잡힌 사람으로 겪은 첫 번째 시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평생에 걸친 시련 여행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그리스도인의 사명 여행의 동반자입니다. 신앙 여행길의 동반자인 시련에 익숙해지는 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