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꿈까지 이뤄주신 하나님의 섭리
‘미래도서관’ 에 담긴 가족 사랑과 신앙의 의미
‘신문기자’ 어린 시절 꿈, 하나님께서 이뤄주심
2009년 4월 21일, 아내와 나는 한일장신대의 도서관 봉헌예식에 참석했다.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정 총장은 교수들과 상의해서 아내의 이름에서 ‘미(美)’자를 따고 내 이름에서 ‘래(來)’를 따 ‘미래도서관’이라고 이름을 지어두었다. ‘아름다운 내일을 소망하는 도서관’이라는 뜻이었다. 마침 내 손녀의 이름도 ‘박미래’여서 그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봉헌예식이 열린 날,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받았다. 영국에 유학 중이던 딸이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당시 만삭의 몸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 논문 마무리 작업을 하던 때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도 제 오빠의 연락을 받고 날아온 것이다. 전날 입국했지만 깜짝 놀래 주려고 일부러 연락하지 않고 오빠 집에서 묵은 뒤 함께 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아들, 며느리, 딸, 손자·손녀들이 다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봉헌식이 치러졌다. 서울에서 전국장로회 장로님들과 소망교회 식구들이 버스 두 대를 타고 와서 축하해주었다. 참석 못한 분들로부터 도착한 화환 백여 개가 줄지어 세워졌다. 감격스럽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삶으로 본을 보여주셨듯이, 나도 자손들에게 아버지로서 본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실현되는구나 싶었다.
나중에 정 총장에게 들어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그때 내가 찾아온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했다.
“장로님, 그때 장로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을 때 저는 천사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희 학교가 중대한 고비였거든요. 교수들 급여도 밀려 있었고 학교 운영은 고사하고 건축비 부채 이자 내기도 버거울 때 장로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당시 실제로 교단의 많은 목사님들도 한일장신대학교가 문을 닫기 직전이라며 회생 불가능이라고 염려하고 있었다. 정 총장은 ‘온 생명을 던져 수습하겠다’는 결심으로 일하다가, 어쩌면 정말로 지쳐 쓰러질 수도 있을 지경일 때 나를 만났다고 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어떻게든 될 텐데…’라고 생각하던 그때 우리 내외의 기부금이 큰 힘이 됐던 것이다.
그 액수가 중요했다기보다는 그렇게 기부자가 나섰다는 점이 언론과 교계에 알려지면서 ‘한일장신대학교가 회생 가능하구나’라는 시그널로 작용했고, 그 이후로 전국의 많은 교회들로부터 기부금이 모였다고 했다. 한일장신대학교는 지금은 부채를 다 갚고 100억 이상 잉여금을 비축한 우수 대학이 돼 있다.
잊었던 꿈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장로여서 받은 축복 중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다.
2009년 9월, 나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장로신문사의 발행인 김건철 장로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나를 장로신문사 사장으로 추천하겠다며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이 자리는 교계에서도 언론인 출신 등 많은 훌륭한 분들이 하고 싶어하는 자리였고, 평생 언론계와 관계없이 산 내게는 걸맞지 않은 제안이었다. 들어보니 이 자리를 놓고 나보다 선배인 장로님들 간에 심한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느 쪽이 돼도 양대 교계 정치세력 간에 갈등이 생길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어느 쪽에서 봐도 무난한 제3의 후보로 내가 낙점됐다는 것이다. 내가 고민 끝에 승낙을 하자 그 두 어른도 수긍을 해주셔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사장 취임식에서 문득 돌아보니 내 어릴 적 꿈이 신문기자였다. 교복을 입고 신문팔이와 신문 배달을 하던 시절, 신문사 지사장이나 기자들과 자주 접촉하며 그분들의 도움을 받았던 탓에 언론인은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가로서의 길에 접어들었고 만족스럽게 사업을 일구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 꿈이 고이 접힌 채 간직돼 있었다. 그 사실을 일흔이 넘은 나이에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잊었던 꿈’까지도 기억하고 이뤄주시는 분이다.
신문팔이였던 배고픈 소년의 꿈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사장직의 지위와 명예를 누리는 것보다 더 하고픈 것이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실무진들과 소통이 필요했다. 모든 직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이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직원과 마주치면 나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했다. 어떻게든 경직된 조직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 청년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서 그렇게 한 것이기도 했다. 전 직원과 지사장, 고문들까지 함께 매년 1박 2일 워크숍을 가기도 했다. 직원들 모두가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으로 5분씩 특강을 하고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자 드디어 ‘소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분위기도 점차 달라졌다. 막내딸뻘 되는 한 여직원은 메일을 보내주었다.
“장로님, 요즘 참 즐겁습니다. 예전 사장님들은 늘 어려워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장로님께서는 제일 나이 어린 저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시고 존중해주셔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것도 즐겁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한 곳에 모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강압이나 지시가 아닌 참여와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남보다 좀 더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똑똑하다. 그럼에도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넘치는 정보와 지식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오히려 단절의 벽이 두꺼워졌다.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일하는 환경이 즐거우면 조직은 남다른 성과를 낼 수 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