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선교 물꼬 틀었던 선교사의 생생한 이야기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교회사(Ph.D)를 전공하고 버클리 GTU 연구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AGSI)와 남장로교연구소(SPSI) 대표 최은수 교수는 지난 6월 19일 ‘최초의 서양 의사 드류 유대모’를 출간했다.
1894년 3월,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실행위원회는 알레산드로 다말 드류(Alessandro Damar Drew, 1859-1926) 의사 선교사를 최초로 한국에 파송했다. 1894년 3월 13일부터 서울에서 의료선교 사역을 시작한 그는 한국으로 파송된 모든 선교사 중에서 지리, 문화, 역사, 국제관계 등 인문학적 소양이 가장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 남장로교회가 감당했던 전라도의 상황은 동학농민혁명의 여파로 어려움이 많았다. 저자인 최은수 교수는 ‘당시 전라도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합하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민초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외세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 있었고,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한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의사요 약사로서 드류 선교사의 의료 사역은 전라도 사람들의 심령 한켠에 복음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인문학적 소양이 탁월했던 드류 선교사는 1894년 3월에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대학 후배인 레이놀즈(이눌서) 선교사와 함께 선교 스테이션 후보지 선정을 위한 전라도 답사를 주도적으로 수행하였다. 지금까지는 레이놀즈 선교사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책을 통해서 드류 선교사가 탁월한 지리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임이 밝혀졌다.
드류 선교사는 서울에서 적십자사 창설에도 참여했고, 콜레라 퇴치를 위한 의료 활동도 적극적으로 수행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며, 전라도 최초의 서양의사로 근대의료의 근간이 되었다. 드류 선교사는 도산 안창호를 적극 후원함으로 대한독립운동의 대의에 함께 했고, 야간학교를 통해 한국인 인재들을 양성하여 한국으로 파송키도 했다. 드류 선교사는 헌신적인 사역을 감당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안식년을 갖게 되었고,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서 끝내 전라도 선교지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신 기증을 함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떠났다. 드류 선교사는 먼지가 되어서라도 전라도 선교지로 가고자 했으며, 그를 태운 재가 바다에 뿌려져서 흘러 흘러 전라도 땅에 닿고자 했던 것이다.
/기사제공 여수종교문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