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향기] 박선용 목사(충청노회, 가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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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꿈 품고, 선교와 섬김의 길을 걷다”

사도행전적 목회여정, 지역과 열방에 복음의 씨앗 심어

말씀과 기도로 세운 교회, 초대교회의 꿈을 품다

가경교회 전경

가경교회를 개척할 당시 박선용 목사는 목회적 중심이 분명했다. 어떤 프로그램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붙드는 교회를 꿈꾸었다.
“목회는 전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만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교회를 세우는 것도,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도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죠. 초대교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길 원했어요.”
복대교회 45주년 기념교회로, 1996년 12월 30일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태영빌딩 3층(약 40평)에서 비전을 품고 시작된 가경교회는 박 목사의 굳건한 신앙과 끊임없는 기도로 성장해 왔다. 박 목사는 2026년 12월이 공식적인 30주년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2027년에 더 큰 은혜로 기념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박 목사에게 주신 사명과 목회 여정은 오직 말씀과 기도라는 중심에서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겨 나가며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첫 번째 사인은 ‘교회 제대로 한번 섬겨 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은 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오늘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지향하며, 말씀과 기도로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겉모습의 성장보다 중심의 온전함, 조직보다 생명력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박선용 목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말씀’과 ‘기도’가 근간이 됐다. 매일 새벽,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가슴에 품고 무릎을 꿇으며 시작하는 하루가 박 목사의 30년 목회의 뿌리였다.
“저의 멘토이신 민병억 목사님께서 부총회장 출마하시고 지역을 돌고 계셨을 때였어요. 어디든 가자고 하시면 제가 모시고 다닐 때였는데 먼 거리를 가면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거기서 잠을 잘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민 목사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청주로 다시 오셔서 새벽기도회를 꼭 인도하셨어요. 제가 민 목사님의 모습을 통해서 말씀과 기도라는 목회 철학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박선용 목사는 설교를 단순한 전달이 아닌 ‘생명을 불어넣는 말씀의 통로’였고, 기도 또한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교회를 살리는 호흡이었다. 말씀과 기도는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쳐, 어느새 교회는 자연스레 박 목사의 목회 철학이 스며 들었다. 가경교회의 신앙 목표인 ‘말씀 충만으로 행복한 성도’, ‘기도 충만으로 평안한 가정’, ‘성령 충만으로 거룩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하나님의 섭리

박선용 목사의 목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에서 시작되었다. 충청 지역에서 호죽교회, 도안제일교회, 무극교회, 충일교회, 강경중앙교회 등을 섬기셨던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학생이던 시절 아버님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오랜 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어린 시절, 목회자의 길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아버님의 고된 목회 현장을 보며 잠시 흔들렸던 순간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버지가 목회하시면서 너무나 많은 수고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목사는 되지 말아야겠다. 세상에는 할 일이 많고, 평신도로서 교회를 섬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간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박 목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뜻밖의 교통사고였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아주 큰 트럭이 와서 저를 덮쳤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 죽었다’, ‘뼈도 다 으스러졌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헬멧 위로 트럭 바퀴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손가락 골절만 당했습니다. 4~5톤 트럭의 바퀴가 제 머리 위를 지나갔는데도요.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박선용 목사는 곧바로 기도원으로 향했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선용아, 내가 불렀는데 너 왜 엉뚱한 짓을 하느냐?’는 이 음성은 가슴에 벼락처럼 깊이 박혔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이었고, 교회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던 때였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길을 택했다가는 또 다른 사고가 날 것만 같았죠.”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박 목사에게는 신학의 길을 열어준 귀한 손길들이 있었다. 증경총회장 민병억 원로목사(복대교회)는 그의 신앙 멘토가 되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었고, 신학교 교수들도 그의 어려움을 헤아려 장학금으로 도왔다. 수많은 은혜의 강물 위에서 박 목사는 신학 공부를 마치고 복대교회에서 교육 전도사, 전임 전도사, 부목사를 거치며 9년간 사역의 경험을 쌓았다.

청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취임

믿음으로 심은 개척의 씨앗

가경교회의 개척은 민병억 목사님과의 깊은 영적 교감 속에서 이루어졌다.
“민병억 목사님이 부총회장 선거를 마치신 후 저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45주년 기념교회로 개척을 하기로 했는데 자네가 나갈 의향이 있느냐? 나는 자네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기회를 추천해 줄 테니 편한 곳으로 가보게.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참 고생스러운 일이거든’이라고 하셨어요.”
박선용 목사는 민병억 목사의 염려와 사랑 앞에서 고뇌에 잠겼지만 결국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젊을 때 한번 도전해 봐야지 언제 해보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개척 예배를 드리기 전 약 100여 일 동안 박 목사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건물 시멘트 바닥에 방석 하나 놓고 엎드려 기도하며 준비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초대교회 정신은 목회의 모토가 되었고, 성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예배를, 행사보다 본질을 붙드는 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말씀’과 ‘기도’로 세워가는 공동체

박선용 목사의 목회 철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지금은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는 지역의 중심교회가 되었지만 출발은 미약했다. 교회의 성장보다 ‘건강한 회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저는 ‘말씀’과 ‘기도’를 두 축으로 삼아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새벽기도회와 금요기도회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 인도해 왔습니다. 기도는 우리 가경교회의 가장 큰 힘이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는 통로라고 확신합니다.”
이 두 가지 기둥은 가경교회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많은 가경동 아파트 단지 특성을 고려해,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부담 없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고, 행복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교인들이 그저 교회에 와서 앉아있다 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경험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배와 말씀, 기도의 DNA가 다음세대에게 심겨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성도들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들에게도 기도와 헌신의 열매가 맺어져서 자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선교지를 후원하며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가경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주일 예배 후 온 성도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박선용 목사는 사도행전의 ‘떡을 떼며’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성도들이 함께 식사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함께 밥을 먹으니 행복하고 싸움도 덜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박선용 목사의 얼굴에는 성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묻어났다. 특히 박 목사는 주일 오후 예배 설교를 직접 인도하고 있다.
“부교육자에게 맡기면 예배 후 바로 집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설교 때문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만큼은 성도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해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제가 직접 강단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효도관광

조화를 이루는 당회와 제직회

당회와 제직회는 은혜 가운데 빠르게 진행된다. 교회 내의 행정과 의사 결정이 단순히 절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묻는 자리라고 한다.
“당회와 제직회는 아주 빨리 마칩니다. 두 달에 한번 당회와 제직회를 하는데 목회하면서 좋은 분들을 만난 것 같아요. 소천하신 선임 장로님이 계셨는데, 제가 안건을 내놓고 읽어 내려가면 중간에 말씀을 하셨어요.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안건을 내놓으셨는데’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대로 하시죠. 모든 안건 동의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 후배 장로님들께서 ‘재청합니다’라고 하시며 마무리가 되었어요. 말없이 함께 기도해 주시는 장로님들이 계셨고 기꺼이 섬기는 권사님들, 안수집사님들 등 항존직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가경교회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혼자 이끄는 리더가 아닌 공동체와 함께 걷는 동행자로서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깊은 신뢰와 연합을 만들어냈고 갈등 없는 건강한 교회로 이어졌다.

비전부 어린이주일 헌신예배

이웃과 함께 숨 쉬는 교회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나타난 구제하는 교회의 모습과 같이 지역사회를 위한 섬김을 힘써 실천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독거노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화요급식 사역’은 교회의 대표적인 나눔 사역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복음과 위로의 시간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에 정말 필요한 교회가 되는 것이 저의 큰 소망입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겼습니다. 화요 급식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분밖에 오시지 않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어르신들이 교회를 찾아오십니다. 식사를 제공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성전을 건축한 후에는 매주 250명에서 300명의 어르신들이 따뜻한 점심을 드셨습니다. 코로나 이후 반토막이 났지만 화요 급식은 끊기지 않고 아직도 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자발적으로 봉사와 헌신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매월 셋째 주일에는 온 성도가 사랑의 헌금을 드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주변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지금까지 섬겨오고 있습니다.”

사랑의 연탄 나누기

땅 끝까지 이르는 비전, 해외 선교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뿐만이 아닌 땅 끝까지 이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현재 필리핀 선교사를 통해 세 교회를 건축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했다. 초기에는 3천만 원 정도의 건축비가 들었지만 최근에는 배 이상으로 비용이 증가했음에도 선교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모든 선교 사역은 자발적인 헌금으로 드려지고 있다. 특히 임직자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액수를 정하고, 임직 헌금 중 3분의 1을 구별해 선교헌금을 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임직자 중 일부는 직접 현지를 방문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완공된 교회 중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필리핀 안티폴로 지역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심방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비가 새는 집에서 박스 두 개를 깔고 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초등학생 3분의 1이 학교에 낼 회비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어요. 그 아이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을 지어주어 책과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도서관 건축사역은 현지 교회와 선교사의 협력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선용 목사는 지난 7월 2일 화요일 출국해 필리핀 안티폴로에 소재한 교회 옆에 필리핀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기공 예배를 드렸다. 1, 2층 건물로 지어질 이 도서관은 1층은 열람실, 2층은 서고로 꾸며져 지역 아이들이 책을 읽고 빌려 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비전부 어린이주일 헌신예배

한국교회의 건강한 미래 위해

박선용 목사는 제105회기 총회 회록서기를 역임하고, 109회기 신학교육부 부장으로 섬기고 있다. 다양한 직분을 감당하며 교단 내부의 일들을 경험하고 교단과 총회를 향한 깊은 책임감도 품고 있다.
“가경교회 뿐만 아니라 총회와 노회, 한국교회를 섬기는 일은 ‘부르심’과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와 총회 섬김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말 자그마한 종으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흔적을 새겨나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목회의 후반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지금부터의 걸음도 처음처럼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처음 개척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충성된 사명자로 남고 싶다는 박선용 목사는 교회 건물은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성령의 임재가 머무는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초대교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되길 소망하고 있다. 특히 박선용 목사의 곁에는 든든한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최근 정년퇴직 후 박 목사의 목회활동을 비서처럼 돕는 조용숙 사모, 세종에서 연구원으로 섬기고 있는 큰아들 부부, 딸은 부목사 사모로서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세 명의 사랑스런 손주들까지 온 가족이 박선용 목사의 삶의 기쁨과 목회 여정에서 가장 든든한 동역자이다.
가경교회는 초대교회처럼 하나님 나라의 꿈이 살아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전략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기도는 박선용 목사와 가경교회 성도들의 순종과 헌신으로 이어진 고백이었다.
/박충인 기자

박선용 목사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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