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기독교를 책의 종교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성경이 삶의 모범이요 기준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목회 현장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한 신앙훈련을 영적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삼고 성경공부가 일상적인 용어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배우고 익힘으로 굳건해진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글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말씀의 역동성을 중시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분을 부각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따라서 성경은 실생활에 필요한 자료를 제시하고 도덕적 인간성을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제공하는 종교 서적이 아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강력하게 외치는 생명력 있는 말씀이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이 지닌 말의 품격은 참으로 중요하다. 말은 일상에서 유익한 내용을 전달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통로이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곤 한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에 이르게 하는지 진지하게 경고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시 10:7). 이에 반해 잠언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다고 했다(잠 25:11). 이처럼 포악한 말은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지만 적절한 말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기쁨을 배가시키는 영향력이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분위기를 밝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기분 나쁘게 만드는 특유의 말버릇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아니, 근데~”란 말투이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아니, 근데’라고 말하며 대화를 끊어버리면 나의 생각이 거부당한 느낌을 받는다. 둘째, 칭찬을 가장해 비꼬는 말투이다. 예를 들어 ‘오늘은 웬일로 안 늦었네, 네가 이해하면 다 이해했다’고 비꼬며 말한다. 이런 말투는 소극적 공격 형태이다. 셋째, 징징거리는 말투는 듣는 사람이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넷째, 부탁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명령한다. 듣는 사람은 부탁인지 명령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 사람을 피한다. 이미 습관화 된 말투는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나의 말투나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수시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고귀한 복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는 폐기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솔직하고 정직하고 품격 있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영원한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상대에게 적절한 접촉점을 알아야 제대로 복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무례하고 강압적이고 배타적이란 평가가 회자되지 않고 거부할 수 없는 복음의 매력이 사회 도처에 널리 전파되길 기대한다.
이광호 목사
<더드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