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賣買)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床)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성전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장소다. 불의한 세상사(世上事)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가축장으로 변한 것과 악취가 나고 오물(汚物)로 뒤덮인 것을 보셨다. 제물로 바쳐질 짐승들의 울음 소리도 들렸다. 안나스의 돈궤를 가득 채워 줄 판매 특권을 받은 장사치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당시 성전의 부패상을 알 수가 있다.
비둘기 파는 자들도 동전 한 푼의 가치밖에 없는 비둘기 한 쌍에 고액(高額)을 받고 판매했다. 그들은 외화(外貨)에 대해 수수료(手數料)를 받고 유대 화폐와 교환해 주었다. 유대 화폐만이 성전에 바쳐졌으며 여인들과 노예와 어린이들을 제외하고는 예배하는 자는 모두 반(半) 세겔의 성전세를 일 년에 한 번씩 지불해야 했다. 성전의 모든 행위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 있었다.
많은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한국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권력 추구, 돈을 향한 탐욕, 교권 추구, 세속화는 그치지 않는다. 주로 영향력이 있는 교회들의 문제이다. 현대 교회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 중의 하나는 주님을 평화의 왕, 은혜의 구주로만 인정하고 공의(公義)의 왕이심을 망각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알 것은 믿음의 본질은 주님 발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청종(聽從)하는 것이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강대국의 식민 정책은 기독교와 동일시(同一視)되기도 했다. 교회와 국가가 선교지에 함께 갔다. 칼과 교회가 한데 엉키게 된 것이다. 한쪽이 거절당하면 다른 쪽도 거절당한다. 서구(西歐)의 식민지에 대한 반대가 있을 때 교회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권력은 어느 시대이고 간에 권력의 안정과 편의를 위해 교회를 이용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 지도자가 민감한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위해 안수(按手)기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지지 발언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의 등불을 들고 세상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권력자들은 필요하면 교회를 이용하려 든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은 대형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린다. 수년 전 대통령 선거전(選擧戰)이 한참 뜨겁던 때였다. 어느 후보가 ‘자신의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교회 목사님은 침묵 대신에 ‘그분은 예전에 출석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출석하고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합당한 용기였다.
존 낙스(J Knox, 1513~1572)가 설교할 때 스코틀랜드의 메리(Mary, 1542~1567 재위) 여왕이 앉아 설교를 들으면서 벌벌 떨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현대의 우리 한국 교회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공의(公義)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이 살아 숨쉬는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각성, 명심해야 한다. 교회가 정화(淨化), 개혁되어 바로 서고 새로워질 때 삶의 영역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세상이 변화된다.
주님께서 한국 교회를 보신다면 다시 채찍을 들으시고 진노하시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이 순결해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대이다. 주님께 복종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도 살고 나라와 백성들이 산다. 지도자가 정욕에 유혹당하면 교회는 부패한다. 정욕(情欲)은 권력욕, 명예욕, 재물욕, 유명하게 되고 싶은 욕망, 권력을 얻으려는 탐욕 등을 말한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두려워하고 무서워 떨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