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그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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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찍 혼자되신 집사님은 3남매를 모두 잘 키우셨습니다. 3남매 자녀들은 모두 안동을 떠나 서울 근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은 교회의 안수집사로 교회에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는 교회의 재목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 집사님이 어머니 집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 교역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둘째 아들 집사님은 우리 교회 중고등부를 다녔고, 그때 두 차례에 걸쳐 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으며, 그는 이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교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꼭 보답하고 싶다고 하면서 식사를 초대한 것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푸근한 인상의 아들 집사님 부부는 효자, 효부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대화 중에 아들 집사님은 30여 년 전, 우리 교회에서 받은 장학금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액수가 정확하게 얼마인지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약 10만 원쯤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가정형편이 무척 어려웠다고 하면서 장학금을 받았을 때 정말 감사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그는 장학헌금을 제게 전달했습니다. 그가 30여 년 전에 받은 것의 꼭 100배가 되는 액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사에 함께 참석한 우리 교회 모든 교역자들에게도 귀한 선물을 전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수 일이 지난 어느 날, 그는 필자에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샬롬!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승학 목사님, OOO 안수집사입니다. 지난번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에게 행복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으로 장학금을 수여한 것은 제5대 담임 임학수 목사님이 교회를 섬길 때인 1936년 2월 3일 제직회에서 당시 평양신학교 박두영, 권태희 등 두 명의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입니다. 이때 장학금은 도서 구입비 명목으로 지급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7년 4월 8일, 제직회는 신학생 류시홍에게 학비 1만 환과 무릉교회 권정경 신학생에게 5천 환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72년부터 교회는 체계적인 장학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했는데, 당시 장학금은 교회 예산에서 마련했습니다. 교인들이 별도로 장학헌금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025년도 장학금 예산 총액은 6천여만 원으로 교회 내외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신학생에게 지급됩니다. 현재 안동교회의 장학금 재원은 전액 성도들의 헌금으로 마련되고 있습니다. 평소 자녀세대 신앙교육에 관심이 있는 성도들은 은퇴기념, 자녀결혼, 본인의 결혼 OO주년 기념 등을 감사하며 장학헌금을 드립니다. 

특히 가정의 달인 5월 마지막 주일에는 전교인이 한 마음으로 정성껏 장학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자녀세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해 우리나라와 지구촌을 위해,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일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 일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협력하고 있는 온 성도들과 가정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1936년 초부터 시작해 90년 동안 계속된 자녀세대를 위한 우리 교회의 관심과 사랑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기를 모든 성도들은 소망하고 있습니다.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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