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야기] 신학의 길을 가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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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미국에 들어오지 마”

병원에서 퇴원한 후 신학의 길을 걷기 위해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찾아갔다. 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을 방문해 신학대학원 시험에 필요한 책을 달라고 했더니 관련 서적을 산만큼 쌓아서 주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도 삼수, 사수를 해야 입학할 수 있다는데, 이렇게 늦은 나이에 공부해서 언제 목회를 시작하나 싶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선교’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하나님의 매를 맞지 않으면서 가장 편하게 선교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좋은 방법도 생각해 두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그곳의 선교 기관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편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형에게 연락해서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루터신학대학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루터신학대학은 토플(TOEFL) 점수가 500점 이상이면 받아 주겠다고 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치르는 시험이고 영어 시험이라 내심 더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 점수 결과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달라지니 떨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나는 처음 치른 시험에서 580점이라는 좋은 점수를 받았고, 미국으로 가서 인터뷰를 하고 입학 허가서도 받아 왔다. 그런 다음 미국 영사관에 비자를 신청했고 비자를 받기 위해 인터뷰를 기다렸다. 당시에는 미국 비자를 받는 게 몹시 까다로웠다. 특히 목사와 신학생은 비자 받기가 더 어려웠다. 목회 사역, 신학 공부를 하면서 불법과 편법으로 미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루터신학대학에 가기 위한 비자 발급을 준비할 때도 주위에서 많이 말렸다. 차라리 일반 대학으로 지원한 다음에 신학교로 편입을 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이제 나를 주의 종으로 쓰기로 하셨기 때문에 대번에 길을 열어 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일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한국에도 신학교가 많은데 왜 굳이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려 하나요?”

영사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 선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꼭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영사가 다시 물었다. “신학 공부를 마친 후에 한국에 다시 들어갈 건가요?” 그때 그렇다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영사는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학생 비자는 물론, 이전에 우리 가족이 받아 놓았던 유효기간 5년의 관광 비자까지 모두 취소시켜 버렸다. 다시는 미국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당황스럽고 눈앞이 캄캄했다.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신학을 하려는데 왜 막으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후로 3년 동안 나는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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