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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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體恤)하는 사랑

두 장로님은 공항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주스를 마시면 조금 나아질까 해서 마셔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내 탑승 시간이 되어 나는 출입국 관리 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혼미한 정신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비행기가 고도로 진입해 들어갈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 신음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옆 좌석에 앉은 손님이 신음 소리를 듣고 동정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고통 중에서도 잠시 눈을 붙였던지 비행기는 어느새 동경 나리다 공항에 착륙해 있었다. 밖으로 나갔다. 일본의 목사님들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그렇게 아프시면 전화를 하시지요.”

“전화를 했지요.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김군식 목사는 나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 그는 나를 숙소로 안내했다. 일본의 전형적인 다다미 방이었다. 따뜻한 구들돌이 있는 한국의 안방이 그리웠지만 그곳은 이미 한국이 아니었다. 비록 거리상으로는 지척이지만 그곳은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일본이었다.

나는 도착한 그날밤 아픔에 잠겨 신음했다. 찬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자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에워싸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환영은 시래깃국이었다. 된장을 풀어서 얼큰하게 끓인 시래기 된장국. 식욕이 당기는 걸 보니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선한 이웃이 되어 주세요

나는 온몸이 떨리고 기침이 나는 것을 달래면서 오전에 두 차례 설교를 했다. 그날의 설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참 이웃인가?’ 였다. 성령께서 크게 감동하심으로 말씀을 증거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강도 만난 사람처럼 신음하고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 스스로는 죽음과도 같은 상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선한 이웃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곧 강도 만난 사람들 중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때 외면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기침을 하며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말씀을 증거하는 중에 ‘아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아침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오전 예배를 끝낸 후 나는 또 다른 교회로 달려갔다. 오후 예배가 4시경에 끝날 즈음 나는 내 몸이 불 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 들었다.

교우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나를 앉혀 놓고 실로암 안과병원의 의료선교 사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는 순교할 각오로 달려왔기에, 힘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서 실로암 안과병원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좌담회가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목사가 양해를 구했다.

“김 목사님이 감기 때문에 더 이상 좌담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나는 그날 밤 거의 뜬눈으로 앓았다. 마치 나사로가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고통의 밤을 지새운 것이다. 나는 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언제쯤이면 한국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 몸이 아픈 내게 동경의 밤은 더욱 춥고 길게만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 암송해 두었던 시편 말씀을 통해 주님께 드리는 기도로 찬양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시편 139편 1~14절까지 암송하는 동안 잠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담임목사와 아침 식사도 할 수 있었다.

고통 속에서 맺은 열매

아침 식사 후 교회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동경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30대 여성이 담임목사를 찾아왔다.

“자매님,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십니까?” “실로암안과병원에 무언가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 자매님은 들고 있던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담임목사에게 내밀었다. “작지만 강도 만난 이웃을 위해 써 주십시오. 기회 있는 대로 계속 돕고 싶습니다.”

헌금 액수는 놀랄 만큼 큰 액수였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매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선한 이웃의 정성을 통해 강도 만난 이들을 치료하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의 금 같은 믿음을 하늘 나라의 귀한 보석으로 아름답게 다듬어 주셔서 축복받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자매님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실로암안과병원에 꼭 필요한 수술 기계 한 대를 도입하게 되었다. 의사들이 여러 차례 수술 기계 구입을 요청했지만 재정 문제로 보류했던 것인데, 동경교회 여 집사님의 헌금으로 해결한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다고 했다. 체휼하는 주님의 사랑에 동참함으로 아름다운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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