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저주 사건이 강조되며 성경에 포함된 이유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 그 독자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서 정착해야 할 땅이 가나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가나안 정복이 노아의 예언 성취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당시 가나안에 살고 있던 족속들은 함의 후손이며 가나안 족속들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노아의 예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 합법적임을 말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후에, 이 저주 사건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가나안 저주 사건은 언뜻 보기에는 사소한 사건이나 큰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노아는 세 아들의 본성이 그들의 후손에게 미칠 것임을 예언했으며 가나안은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될 것으로 저주했다. 셈과 대조적으로 가나안은 셈의 종으로 전락하는데 “종들의 종들이 돼라”라는 것은 히브리어 관용어로 가장 비천한 종을 의미한다.
얼핏 보면 가나안에 대한 저주가 노아 개인의 분노처럼 보인다.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일이 그토록 큰 잘못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더욱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는 노아 자신이다.
그러나 노아가 함을 저주한 것은 함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린 것으로 이해한다.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그 후면에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가 숨어 있다. 내면의 악이 그 일을 통해 한순간 드러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인류가 멸망으로 이끈 죄악과 비교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와 허물에 찌들어 있다. 노아의 술 취함은 이교도의 특징이자 홍수 이전 그 당시 사람들이 방탕하며 즐기던 사회현상이다. 대홍수를 겪었으나 근본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음을 노아와 함과 가나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속사적 측면에서 보면 함 족속 역시 종의 신분으로나마 셈과 야벳의 장막에 거하기에 구원계획에서 배제당하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에게는 그대로 적용 성취되었으나 모든 개인에게는 불가항력적 운명적 선언은 아니다. 가나안 족속인 라합과 롯은 언약 안에 들어왔고 한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오히려 유대인이나 서기관과 바리세인은 저주가 선언되었고(마 23:13-39) 이스라엘은 불신앙으로 거절되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요 3:16).
종의 신분의 의미를 영적 상속권과 관련해서 본다면, 셈은 하나님의 상속권을 받는 것이며 가나안은 하나님의 분깃이 없음을 나타내며 언약의 계열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성경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심판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때까지 이들 후손 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크고 참으시며 기다리신 후에 진노하신다는 것을 입증한다. 여호수아 시대를 주전 1400년경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수천 년 동안 가나안 사람에게도 미쳤다는 것이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가나안이 조상임)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 15:16) 이 말씀으로 하나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