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함께하는 행복한 노년] 끝까지 사랑하는 공동체, 교회의 본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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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교회를 열심히 섬기던 장로님 가정이 있었다. 장로님은 사업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겼고, 헌금은 물론 봉사와 헌신의 자리에서 늘 앞장서 섬김으로 본이 되셨다. 교인들은 장로님을 신뢰해 자신의 돈을 맡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의 아내 또한 집사로서 여전도회, 구역장, 주일학교 교사로 열정적으로 헌신했고, 세 자녀 역시 교회학교에서 봉사하며 ‘믿음의 가정’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님의 사업이 사기를 당하며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투자한 광산에는 아무런 광물질이 없었고 모든 재산은 순식간에 차압당했다. 장로님은 사기범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집을 비웠다. 그 사이 낯선 사람들이 무단으로 집에 들어와 흉기를 들고 “아버지 어디 있느냐”며 딸을 위협했다. 고3이던 장녀는 충격으로 쓰러졌고 그 때문에 어린 나이에 편마비가 왔다.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새해가 막 시작된 1월, 그들은 집에서 쫓겨나 지하 주차장에서 비닐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 했다. 돈을 맡겼던 성도들은 “내 돈부터 갚으라”며 채근했다. 딸이 힘겹게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려 할 때, 한 성도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 빚이나 갚으라”는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교회 내 일부 성도들은 이 가정이 은혜가 안된다며 다른 교회로 옮기길 암묵적으로 종용했다.

교회는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 

성공한 이들만이 존중받고, 실패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가?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이 ‘존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공동체이며 그 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끝까지 사랑하심’에 근거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아시면서도 그 발을 씻기셨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죄인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분의 사랑은 조건 없는 수용이었고 끝까지 책임지는 헌신이었다. 물론 교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니며 무조건적 재정 지원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위기 가운데 있는 성도를 향한 교회의 태도는 세상의 그것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끝까지 사랑하는 교회’, ‘고통 속에 함께 머무는 교회’, ‘실패한 자를 다시 세우는 교회’가 되는 일, 예수님의 사랑을 본질로 한 회복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유럽의 웅장한 성당들이 오늘날 텅 비어 관광지로 전락한 이유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을 돌보지 않는 교회, 성도의 고통에 눈감는 교회는 결국 신뢰를 잃고 존재의 이유마저 상실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교회들이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하는 공동체,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다시 스스로 물어보자. 교회는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 성공한 사람만을 환영하는 곳인가 아니면 실패하고 넘어져도 품어주고 손잡아 주는 곳인가? 이 질문에 교회가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한국교회는 다시금 회복과 부흥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회복은 외형의 성장이 아니라 위기와 절망 속에서 탄식하는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끝까지 품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강채은 목사

<사랑교회, 前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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